푸틴, 미-소 핵균형 빗대 ‘러시아의 미국 견제 구실’ 강조
“미국의 핵 기밀을 빼내온 소련의 첩보요원들에게 감사한다.”
3월4일로 예정된 러시아 대선에서 3선을 노리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22일 60년도 지난 냉전 초기의 미-소간 핵 경쟁을 들먹이며 미국의 일방 독주를 견제하는 러시아의 역할을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푸틴이 러시아 군 장성들 앞에서 “미국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을 때 소련은 이를 개발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소련의 재외 스파이 조직을 통해 많은 양의 정보를 취득했다. 그들은 많은 정보를 마이크로필름이 아닌 말 그대로 가방째로 가져왔다. 미국이 유일 핵보유국이 되지 않게 해준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이터>는 이날 푸틴의 발언을 “러시아가 미국의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균형추가 되어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풀이했다. 푸틴은 소련의 정보요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미국의 핵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미국인 과학자가 핵 관련 기밀을 소련에 넘겼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주인공은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을 때 갓 18살이었던 하버드대학 출신의 천재 물리학자 시어도어 홀(1925~1999)이었다.
푸틴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쓰인 원폭을 개발한 이들은 지성을 가진 엘리트들로, 어느 한쪽만 이런 무기를 갖고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냉전 때 미·소는 치열한 핵 경쟁을 벌였지만, 한쪽이 이를 사용하면 상대방의 보복으로 공멸한다는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으로 공포스런 핵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으로 처음 취임한 이후 미국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대항마로서 러시아가 제구실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가 최근 나토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해 러시아 국방 현대화 계획을 밝힌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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