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본고장서 ‘반마피아’ 주지사 당선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방의회 선거
베를루스코니, 텃밭서 정치적 타격

전세계 마피아의 ‘본고장’ 시칠리아에서 사상 처음으로 ‘반 마피아’를 기치로 내건 후보가 주지사로 당선됐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9일 전날 치러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주지사 선거에서 중도좌파인 민주당의 로사리아 크로세타 후보가 31%를 득표해 25% 득표에 그친 자유국민당(PLD)의 세바스티아노 무스베치 후보에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크로세타 후보는 시칠리아섬을 기반으로 성장한 세계적인 폭력 조직인 마피아에 대한 반대 노선을 명확히 밝혀 그동안 수차례 살해 위협을 받아왔고, 지금도 경찰의 경호를 받고 있다.

그동안 시칠리아의 주지사들은 마피아들에게 적절한 이권을 보장하는 대신 지지를 확보하는 공생 관계를 이어왔다. 지난 7월 라파렐 롬바르도 전임 지사가 중도 사퇴한 것도 마피아 연루 의혹과 재정 파탄에 대한 책임론이 겹쳤기 대문이다. 그보다 앞선 살바토레 쿠파로 지사는 이미 마피아 관련 혐의가 확정돼 7년형을 받고 복역중이다.

크로세타 후보는 당선을 확정지은 뒤 “시칠리아에서 좌파이자, 마피아에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오늘은 새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적극적인 변화를 택했다기보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표출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지적대로 이번 투표의 선거율은 지난 2008년 선거의 67%에서 47%로 크게 떨어져 역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신생 정당인 ‘다섯개의 별 운동’의 후보가 18.5%의 득표율로 약진한 점도 눈에 띈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에서 폭넓은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는 다섯개의 특별주 가운데 하나로 고질적인 행정 비능률과 부정부패 탓에 지난 7월 재정위기에 빠졌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전체 국내총생산의 5.5% 정도를 점하는 지역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무려 40%에 이르는 등 정치 불신이 만연한 상태다.

외신들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라고 전했다. 지난 26일 마리오 몬티 총리를 몰아내겠다며 정계 잔류 선언을 한 직후 텃밭으로 자부해 온 시칠리아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다. 조기 총선 요구 가능성을 비쳤던 그는 이번 패배로 공세를 이어갈 동력을 잃게 됐다.

길윤형 기자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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