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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남북한 주민들의 삶 향상되는 과정에서 통일 이뤄져야”

등록 2014-07-08 15:33수정 2014-07-11 15:01

김동춘 교수. 사진/ 야지마 쓰카사 photo521@hotmail.com
김동춘 교수. 사진/ 야지마 쓰카사 photo521@hotmail.com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남북통일 이후 사회통합 독일보다 훨씬 더 힘들 것”
“북한의 체제와 현실·북 주민 정체성 이해 선행돼야”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25년이 흘렀다. 이듬해 공식적으로 ‘독일 통일’이 이뤄진 뒤, 45년 간 떨어져 있던 그들은 하나가 되었을까. 실천적 사회학자인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2월부터 석달 동안 독일 베를린에 머무르며, 독일 통일 이후의 사회통합에 대해 연구했다. 특히 과거 동독 지역의 주민들을 만나 그들이 통일 이후 안고 있는 심리적 무게와 현실에 대해 살폈다. 김 교수는 “통일 이전 서로 간에 소통이 있었고, 상대방 체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독일도 초기 사회 통합이 힘들었고, 아직까지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있다. 현재 남북 관계로 봤을 때는 한국의 통일 이후 사회통합은 독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 인터뷰는 지난 5월18일 베를린 5월 민중제 행사장에서 진행했다.

■ 통일 그 후, ‘머릿 속의 장벽’ 김 교수는 독일에 머무르면서. 교수, 노동자, 자영업자, 기자, 학생 등 다양한 직업군의 구 동독 주민들을 만났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동독 주민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통일 이후 동독의 기억, 과거 소중한 것들을 부인하도록 요구 받는 것에 대한 마음의 한, 응어리가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통일 이후 자유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독 체제에 대한 철저한 과거 청산이 이뤄졌는데, 이것이 동독 주민들에게 불편한 감정으로 남아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비밀경찰 체제와 같은 동독의 ‘구악’을 강조하며 각종 기록과 신상 등을 낱낱이 공개한 박물관 등이 그 예다.

김 교수는 “구동독 주민들은 통일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통일 이후 법적, 제도적으로 자신이 살았던 사회와 과거 경험을 총체적으로 부인하도록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다”며 “현재 동독 지역에서 좌파당이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것도 부인된 정체성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통일 전 이미 왕래가 있었던 독일도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현재 철저한 적대관계로 남아있는 남북 상황에선 더욱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처럼 부드럽게 통일을 해도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있는데, 우리 사회는 지금 준비도 안 돼있고, 준비할 의지도 없습니다. 천민자본주의 시각으로 북한 주민들을 ‘가난하니까 못난 사람’으로 보고 있는데,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들의 갈등은 독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겁니다.” 김 교수는 “북한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폐쇄적이지만, 대외자주성 등의 문제에서 그들이 느끼는 도덕적 우월감과 자존심은 동독 주민들보다는 훨씬 크다”며 “남북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부인한다면, 사회 통합은 기간도 두 배 이상 걸리고 북한 주민들의 상처도 동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체제와 현실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통일은 남북한 주민들의 삶의 향상에 기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지, 그 자체로 최종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나치 청산은 독일 정체성의 문제” 김 교수는 지난 2007년에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청산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있으면서도 독일을 찾았다. 전 세계에서 독일만큼 과거 청산을 잘한 나라는 없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그 중 첫 번 째로 꼽는 것이 바로 법적 규제, 이른바 ‘홀로코스트 부정 금지법’이다. “독일에서는 나치당이 합법적으로 등장할 수 없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나치 과거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는 것도 다 처벌 대상입니다. 속으로는 그런 감정이나 의견을 가질 수 있겠지만, 공론장에서 이야기하는 순간 어렵게 성취한 ‘문명’이 후퇴한다고 본 것입니다.” 김 교수는 “그 외에도 인종차별적인 발언 등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시민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들도 금기시되어 있다”며 “현재 우리 사회의 ‘빨갱이’나 ‘종북좌파’, 호남지역을 비하하는 발언 등이 독일 사회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며 지적했다. 68혁명을 통한 나치 반성과 사회 전반적인 ‘기억 투쟁’도 뒤이어 계속됐다. 김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탈나치화가 철저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과거 나치 부역세력들이 다시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며 “68혁명을 통해 그런 것이 한번 더 뒤집혔다. 청년들, 즉 밑에서부터의 청산이 한 번 더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68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나치 정권 때 아버지는 무엇을 했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더욱 철저한 나치 청산과 자기 성찰을 촉구했다는 설명이다. 독일은 이후 독일 곳곳에 세워진 유대인 수용소 현장, 박물관, 기념탑 등을 통해 꾸준한 성찰을 이어갔다.

“독일은 학교에서부터 과거사 교육을 철저히 합니다. 히틀러만 잘못을 했는가, 그 당시 평범했던 독일인이 무엇을 했고, 어떻게 범죄에 가담을 했는지를 가르치고 이를 자제할 수 있는 시민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시민적 차원의 과거사 청산 작업과 교육이 계속 된 거죠.”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나치 청산과, 통일 이후의 동독 공산주의 과거 청산으로 나뉜다. 통일 이후 이 두 가지 과거 청산에 대한 긴장은 없었을까. 김 교수는 “통일 이후 동독의 공산주의 청산을 강조하면 상대적으로 나치 청산의 중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면서 “독일의 나치 청산 문제를 담당했던 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고 말했다. 사민당의 과거사 정책을 담당하면서 서독의 탈나치화에 큰 영향을 끼쳤던 베른트 파울렌바흐(Bernd Faulenbach) 보훔대학 교수의 대답은 간단하지만 단호했다고 한다. “나치 청산의 문제는 독일 정체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계속되는 ‘기억 투쟁’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과거 청산이 이뤄질 수 있는 배경이다.

베를린/글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사진/ 야지마 쓰카사 photo521@hotmail.com

최혜정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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