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유럽

55시간의 치밀한 범행…영국, 러시아 이중스파이 음독 사건 범인 지목

등록 2018-09-06 16:10수정 2018-09-06 19:34

영국, 러시아군 총정보국 장교 2명 기소 발표
3월2일 영국 입국 후 55시간동안 노비촉 살포하고 복귀
지난 6월 발생한 스터게스·로울리 음독 사건도 관련성 커
루슬란 보쉬로프(왼쪽)와 알렉산더 페트로프. 런던경찰청 누리집 갈무리
루슬란 보쉬로프(왼쪽)와 알렉산더 페트로프. 런던경찰청 누리집 갈무리
지난 3월2일 금요일 오후 3시, 러시아 모스크바공항에서 출발한 아에로플로트 항공기 에스유(SU)2588편이 영국 런던 개트윅 공항에 착륙했다. 이 여객기에 타고 있던 알렉산더 페트로프(39)와 루슬란 보쉬로프(40)는 런던 동쪽 바우로드에 있는 1박에 40파운드(약 5만8000원)짜리 시티 스테이 호텔에 짐을 풀었다. 3일 오전 11시45분, 얇은 패딩을 껴입고 니트모자를 쓴 두 사람이 워털루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차를 타고 오후 2시25분 솔즈베리에 도착했고, 2시간여 마을을 돌아보다가 오후 4시11분 다시 런던행 기차에 올랐다. 같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묵었다.

4일 오전 8시5분, 두 사람은 전날과 같은 경로로 솔즈베리를 다시 찾았다. 페트로프는 얇은 봄 잠바를 입고 배낭을 멨다. 이날 오후 4시15분 러시아 이중스파이 출신 세르게이 스크리팔(66)과 딸 율리아(33)가 신경작용물질에 노출돼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들 부녀 사건이 알려지기 2시간여 전인 오후 1시50분, 페트로프와 보쉬로프는 이미 런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곧장 히스로 공항으로 갔고, 밤 10시30분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올랐다. 딱 55시간짜리 ‘여행’이었다.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 음독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러시아군 총정보국 장교 루슬란 보쉬로프(왼쪽)와 알렉산더 페트로프가 지난 3월3일 솔즈베리역에서 런던행 기차를 타려하고 있다. 런던경찰청 누리집 갈무리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 음독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러시아군 총정보국 장교 루슬란 보쉬로프(왼쪽)와 알렉산더 페트로프가 지난 3월3일 솔즈베리역에서 런던행 기차를 타려하고 있다. 런던경찰청 누리집 갈무리
사건 발생 후 6개월 동안 수사당국은 1만1000시간 분량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과 1400명의 목격자를 조사해 범인을 지목했다. 5일(현지시각) 런던경찰청과 영국 검찰청(CPS)이 스크리팔 부녀의 암살을 기도했던 용의자로 러시아군 총정보국(GRU) 장교 페트로프와 보쉬로프를 살인공모·살인미수·화학무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영국 검찰은 두 사람의 얼굴과 폐회로텔레비전 영상 갈무리 사진도 공개했다. 두 사람은 스크리팔 부녀가 공격당한 날 오후 1시5분, 부녀 집 근처 폐회로텔레비전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사당국은 이때 두 사람이 부녀의 집 현관문에 향수병에 담겨있던 군사용 독성물질 노비촉을 바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사람은 4일과 5일 출발하는 모스크바행 비행기 티켓을 모두 예약하는 등 치밀한 작전을 짰던 것으로 드러났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이날 하원에 출석해 “러시아 총정보국은 고도로 훈련된 조직이다. 이건 독자적인 작전이 아니었다”며 “정부 고위급에서 승인된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국가 안보기관이 보유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보복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더 타임스>는 메이 총리가 언급한 ‘수단’에 사이버 전쟁이 포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럽연합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인터폴이 적색 수배령을 내렸지만, 영국 수사당국은 러시아가 자국민을 인도하지 않던 전례를 고려해 두 사람에 대한 인도 요청을 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 음독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러시아군 총정보국 장교 루슬란 보쉬로프(왼쪽)와 알렉산더 페트로프가 지난 3월4일 솔즈베리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 런던경찰청 누리집 갈무리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 음독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러시아군 총정보국 장교 루슬란 보쉬로프(왼쪽)와 알렉산더 페트로프가 지난 3월4일 솔즈베리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 런던경찰청 누리집 갈무리
영국 정부는 이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외교적으로도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 쪽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크렘린 궁과 러시아 외무부는 영국 정부의 발표를 두고 “의미 없다”며 “공동 조사 없이는 어떤 증거도 신뢰할 수 없다”고 입장을 냈다.

공교롭게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틀 전인 지난 3일 해외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정보요원의 신상을 기밀화하는 내용이 담긴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 때문인지 영국 정부 발표를 제외하고 페트로프와 보쉬로프에 대한 정보는 드러난 것이 거의 없다. <가디언>은 보쉬로프가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출생했으며, 현 주소는 모스크바로 돼 있지만 이웃들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다고 전했다. 페트로프는 모스크바에 있는 면역 약품 생산 회사의 직원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날 영국 수사당국은 스크리팔 부녀의 노비촉 중독 사건과 돈 스터게스(44)·찰리 롤리(45) 커플의 노비촉 중독 사건 사이에도 연관성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커플은 지난 6월 솔즈베리에서 13㎞ 떨어진 에임즈버리 집 앞 자선기부함에 놓여있던 ‘니나리치’ 향수를 만졌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향수상자에 들어있던 병과 상자가 모두 모조품이었다고 밝혔다. 스터게스는 결국 7월8일 세상을 떠났고, 롤리는 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닐 바수 런던경찰청 대테러 대책본부장은 “두 사람이 공격의 목표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희생자가 됐다”며 스크리팔 부녀 사건과 함께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