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숨진 그단스크시의 파벨 아다모비츠(53) 시장 아다모비츠 시장 트위터 갈무리
1980년대 말 동유럽에 민주화를 가져온 노동자들의 ‘강고한 연대’를 상징했던 도시에서 시장이 괴한의 칼에 찔려 숨졌다. 폴란드에선 국가를 양분하고 있는 “증오를 멈추자”는 시민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에이피>(AP) 등 주요 외신들은 15일 발트해에 면한 폴란드 북부 도시 그단스크시의 파벨 아다모비츠(53) 시장이 13일 괴한의 칼에 찔린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숨졌다고 보도했다. 아다모미츠 시장은 ‘하늘의 불빛을’이란 이름의 병든 아이들을 위한 모금 행사에 참가 중이었다. 그는 숨지기 직전 연단에서 한손에 불꽃을 들고, “지금은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기 위한 가장 좋은 때”라고 말했다.
폴란드 당국은 칼을 휘두른 이는 스테판이란 이름의 올해 27살 남성이라고 밝혔다. 그는 범행 직후 폴란드 야당인 ‘시민연단’(PO)을 비난하며 “그들이 여당이던 때 부당하게 형무소에 수감돼 고문당했다. 이것이 아다모비츠가 숨져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다모비츠는 이미 2015년 탈당한 뒤였다.
외신들은 이 사건을 극우화 되어가는 폴란드의 음울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묘사했다. 1980년대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일하던 ‘철의 남자’들이 조직한 자유관리노조 ‘연대’의 민주화 운동이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이후 싹을 틔워가던 동유럽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연대의 대표 위원장이던 레흐 바웬사는 이후 폴란드의 대통령이 됐다.
그단스크 시민들이 14일 폴란드 그단스크의 옛 시가지의 ‘골든 게이트’ 앞에서 촛불을 모아 놓고 이날 숨진 파벨 아다모비츠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그란드크/EPA 연합뉴스
이후 1990년대 중반 ‘연대’에서 현재 폴란드를 이끄는 우파 정당인 ‘법과정의’(PiS)와 제1야당인 ‘시민연단’(PO)이 갈라져 나왔다. 시민연단은 친 유럽연합(EU)적인 노선을 기초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정권을 이끌었다. 도날트 투스크 현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이 정당 출신이다. 이후 정권을 이어받은 법과정의는 집권 뒤 극우적인 색채를 드러내며 언론 자유를 제한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해 왔다. 이들은 지난해 2월 “폴란드의 존엄과 역사의 진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2차 대전 중에 사용됐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폴란드의 수용소’라고 표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나치에 협력했던 역사의 치부를 감추려는 것”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1998년 이후 그단스크 시장을 지내 온 아다모비츠 시장은 성적 소수자와 유대인 등 소수자에 대한 관용을 주장해 왔고, 지난해에는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에도 참가했다. 내전으로 다친 시리아 아이들을 그단스크로 데려와 치료를 하자고 주장했다가 법과정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다. 이 일이 있는 뒤 폴란드 극우단체는 그에게 ‘정치적 사망’을 통고한다며 위협을 가했다.
영국 <비비시>(BBC)는 아다모비츠 시장은 “폴란드의 유력 정치인으로 자유로운 정치관과 긴 재임기간으로 유명했다. 그는 두 아이의 아빠였다”며 갑작스런 사망을 애도했다. <에이피>도 14일 수도 바르샤바에 몇몇 시민들이 “증오를 멈추자”는 커다란 펼침막을 들었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