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의사당의 시계탑 빅 벤을 배경으로 영국 국기와 유럽연합기가 휘날리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총리가 주도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안이 의회에서 15일 최대 표차로 부결되면서, 영국은 갈 길을 잃었다. 살고 있던 동네를 박차고 나온 노인이 가야 할 길을 헤매면서 옛날 동네를 향해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맺자고 투정하는 형국이다.
브렉시트 협상안의 부결로 영국이 가야 할 길은 복잡하게 갈라지게 됐다. 그 어떤 길도 영국 입장에서는 마땅치도 않은 데다, 합의를 모으기도 힘든 형국이다.
■
재협상=메이 총리는 일단 재협상을 해야 한다. 앞서 의회가 협상안이 부결되면 3일 내로 새로운 협상안을 가져오라고 의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회를 만족시킬 새로운 협상안이 3일 내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제로이다.
■
협상 시한 연장=오는 3월29일로 규정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늦추고 협상 시한을 연장하는 방안이다. 유럽연합 조약 50조를 적용하면, 오는 7월 내외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국 내에서 총선이 실시되거나, 제2의 국민투표가 가결되면, 더 장기간의 협상 시한 연장이 필요하다. 협상 시한이 연장된 가능성은 80%로 점쳐진다.
■ 플랜B 가동=메이 총리가 자신의 협상안을 완전히 내려놓은 뒤 유럽연합과의 협상시한을 연장하는 한편 초당적인 합의를 추진하는 방안이다. 노르웨이 모델이 유력하다. 즉, 유럽연합의 단일시장에 접근하는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대가로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자유로운 이동을 완전히 수용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이 격렬히 반대하나, 노동당 등 야당에서는 수용할 수 있다.
■
메이 총리 사임시키기=집권 보수당은 불신임안이 가결되어 총선이 실시되면, 노동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우려를 한다. 그래서, 불신임 투표에서는 메이를 지지한 뒤 그의 자발적 사임을 촉구하는 것이다. 불신임안 투표에서 메이가 살아남으면, 그는 오는 12월까지는 그에 대한 불신임을 제출할 수 없다. 보수당은 대신에 내각 구성원들을 총리에게 보내 정중하게 사임을 요구해 관철시키는 방안이다.
■
총선=관건은 집권 여당 보수당에서 얼마나 많은 반란표가 나올 것인가이다. 보수당 내에서 제2의 국민투표를 추진하자는 브렉시트 반대론자들이 반란에 가세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또 다른 방안은 메이 총리 자신이 정부를 해산하고, 총선을 요구하는 공세적 대처이다. 노동당이 가장 우려하는 방안으로, 이 경우 메이가 오히려 공세적으로 사안을 주도하는데다, 승리할 경우 더 강한 정부 장악력을 갖게 된다.
■
제2의 국민투표=보수당과 노동당 내에서 다수의 의원이 선호하는 방안이다. 또 이를 지지하는 범국민적 운동이 격렬하다. 하지만, 메이 총리가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노동당이 공식적으로 나선다면 가능성은 커진다. 하지만,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자신은 다른 브렉시트 협상안을 선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
노딜=결국 유럽연합과 아무런 새로운 관계도 맺지 못하고 탈퇴하는 것이다.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북아일랜드 국경을 어떤 형식으로든지 개방하는 브렉시트보다는 노딜 브렉시트가 더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의 경우,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무역 관계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룰에 따르게 된다. 당장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자국으로 오는 수출입품에 대한 관세 문제를 처리해야 하고, 국경 통제도 시행해야 한다. 현재 영국은 이런 시스템을 갖춰놓지 못해 큰 혼란이 예상된다. 수출입품 통관이 몇달씩 지체될 수 있다고 경고되고 있다. 약 40%의 가능성이 예상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