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는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2차대전 때 교황이었던 비오 12세 시절의 비밀 문서를 내년에 전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비오 12세를 둘러싼 ‘홀로코스트 묵인’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일 비오 12세의 교황 즉위 81돌이 되는 2020년 3월2일 “그의 재위 기간 작성된 교황청 공식 외교문서를 연구자들이 볼 수 있도록 봉인을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교황청 비밀문서고 직원들을 만나 “교회는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내 전임자와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이 기록 유산을 연구자들에게 공개한다. 연구자들이 비오 12세의 기록과, 역사의 가장 어렵고 잔인한 시기에 이뤄진 그의 은밀하지만 활발한 외교를 열린 가슴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청은 일반적으로 교황의 재위가 끝난 지 70년이 되면 문서를 공개한다. 이에 따르면 비오 12세 때 문서는 2028년에 공개돼야 하지만 일정을 8년 앞당긴 것이다.
비오 12세는 바티칸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현대사 논란들 중에서도 핵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2차대전 발발 6개월 전인 1939년 2월 교황에 선출됐고 1958년 10월 선종했다. 재위 기간 중 나치는 600만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이를 두고 일부 학자들은 반공주의에 경도된 비오 12세가 학살에 침묵하거나 혹은 이를 방조했다고 비판해왔다. 비오 12세는 교황 선출 전 오랫동안 독일에서 바티칸의 외교 사절로 근무해 나치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이런 비판이 집대성된 것이 1964년 나온 독일 연극 <신의 대리인>이다.
이에 맞서 교회에선 비오 12세가 평화를 위해 이탈리아의 참전을 늦췄으며, 이탈리아에서 유대인 사냥이 이뤄졌을 때 교회를 개방해 이들을 보호했다고 주장해왔다. 그 때문에 가톨릭 연구자들은 비오 12세 때 바티칸이 내린 여러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 서둘러 문서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논란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오 12세 시절의 문서에는 누군가에게 과묵함으로 보일 수 있는 엄중한 어려움의 순간들, 인간과 기독교의 신중함에서 비롯된 고통스런 결정들이 들어 있다”며 “(교회에 대한 비판은) 어떤 편견과 과장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서 공개를 앞당긴 이유는 비오 12세의 성인 추대를 서두르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에이피>(AP) 통신은 문서 공개로 비오 12세가 나치의 학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벗는다면 이런 절차를 앞당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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