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도심에서 23일 열린 브렉시트 반대 시위에서 시민들이 테리사 메이 총리를 비판하는 조형물 주변을 행진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2차 국민투표를 실시하라.”
23일 런던 도심을 가득 채운 100만명의 영국 시민들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영국 의회가 브렉시트 합의안 처리에 거듭 실패하며 사실상 기능부전 상태에 빠지자 시민들이 직접 나서 브렉시트 결정을 되돌릴 수 있는 2차 국민투표를 요구한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런던 도심에서 열린 ‘국민에게 맡겨라’란 이름의 브렉시트 반대 시위에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참가했다고 보도했다. 외신이 공개한 드론 영상을 보면 런던 의회의사당,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주변의 모든 거리가 시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다. 현지 언론은 역사상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던 2003년 2월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였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이뤄진 브렉시트 반대 시위엔 70만명이 참가했다.
시위대는 유럽연합 깃발과 ‘브렉시트를 멈춰라’, ‘테리사 메이 총리는 물러나라’ 등의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도심을 행진했다. 메이 총리의 코가 피노키오처럼 길어져 영국 국민의 몸통을 관통하는 모습의 대형 인형도 전면에 등장했다. 시민들은 “테리사 총리는 더는 국민 편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정권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날 시위엔 톰 왓슨 노동당 부대표, 빈스 케이블 자유민주당 대표,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사디크 칸 런던시장 등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빈스 케이블 대표는 연단에 올라 “우리 메시지는 분명하다. 브렉시트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유럽연합(EU)에 남길 원한다. 2016년 국민투표 당시 투표권이 없던 젊은 유권자들이 투표하면 유럽연합에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도심을 가득 채운 시위대. <비비시> 누리집 갈무리
영국 의회 누리집에 지난 20일 올라온 브렉시트 취소 청원의 온라인 서명자 수는 나흘만에 480만명을 돌파했다. 영국 언론은 ‘브렉시트를 취소하고 유럽연합에 남자’는 제목의 청원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정치권의 무능과 불신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했다.
청원 서명자수가 10만명을 넘으면 의회 내 토론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2차 국민투표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영국 하원이 14일 2차 국민투표 실시 안건을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도 “국민투표 실시는 2016년 투표 결과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아이시엠(ICM)이 이달 초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영국 국민의 브렉시트 찬반 의견은 각각 41%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앞서, 메이 총리는 21일 유럽연합과 29일로 예정됐던 브렉시트를 일단 4월12일까지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만약 다음달 12일까지 영국 의회에서 합의안이 통과되면 브렉시트는 5월22일 이뤄진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