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9일, 1백만명의 영국 시민이 런던 의회광장에 모여 유럽연합 깃발을 든채 “이제 지긋지긋한 브렉시트 논란을 끝내자”며 브렉시트 반대를 외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결행하겠다”고 줄곧 공언해온 브렉시트(Brexit) 시한(10월31일)이 1주일 코앞에 다가오면서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의회)의 브렉시트 극장은 불과 몇분만에 승리가 패배로 뒤바뀌며 요동치는 등 극적인 혼돈 드라마를 또 연출하고 있다. 도널트 투스크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27개 회원국에 ‘브렉시트 시한 연기’ 허용을 권고하고 나섰다.
22일 영국 하원은 지난 주말 존슨 총리와 유럽연합(EU) 나머지 27개국이 막판 타결에 이른 새 브렉시트 협정 타협안에 대한 신속처리 계획안건을 부결시켰다. 이 ‘부결’에 앞서 이날 밤 하원은 이 타협안을 실행하기 위한 입법안에 ‘원칙적으로는 찬성·지지하며, 표결에 붙이자’는 안건을 329 대 299로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영국 의회가 2016년에 유럽연합 탈퇴를 가결한 이후 3년만에 이뤄진 깜짝 놀랄만한 첫 ‘의회 가결’이었다. 이 순간만해도 존슨이 획기적인 승리를 거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불과 몇분 뒤에 이어진, 이 입법안에 대한 신속처리 의사진행 동의안은 322 대 308의 근소한 차이로 정작 부결되고 말았다. 오는 31일까지 브렉시트를 완수하기 위해 의회가 사흘 안에 심의·표결하도록 명시한 존슨의 신속처리 동의안은 “승인하기엔 너무 촉박하다. 검토할 시간이 좀더 필요하다”는 다수 의원들의 반대로 부결되고 만 것이다. 이에 따라 31일까지 ‘질서 있는 퇴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신속처리안건이 부결되면서 ‘패배’가 확인된 직후 존슨 총리는 “‘노딜 브렉시트’ 현실화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겠다”면서도, “브렉시트 시한 연기에 대한 유럽연합의 동의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타협안에 대한 비준 추진은 일단 중단하겠다. 이제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그들의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허탈해했다.
존슨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투스크 유럽이사회 의장은 자신에 트위터에 오는 31일로 정해진 브렉시트 데드라인을 ‘내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연기하자’는 영국 쪽의 요청을 승인할 것을 회원국들에 권고했다. 이 연기 요청은 지난 20일 존슨 총리가 마지못해 유럽연합에 서한으로 제출한 바 있다. 다만 투스크 의장은 연기 기간은 언급하지 않았다. 브렉시트 이슈를 둘러싼 현재의 법률적 상태로만 따지면 유럽연합 27개국이 연기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오는 31일 ‘노딜 브렉시트’가 그대로 진행된다. 물론 유럽의 지도자 모두 한결같이 ‘노딜 사태’는 막아야 한다고 언급해왔다. 연기 결정은 27개국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확률적으로 극히 낮은 시나리오이지만 단 한 곳이라도 연기에 반대하면 노딜은 현실화된다.
외신이 전하는 브뤼셀(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도시) 소식통들에 따르면, 27개국이 즉각적으로 연기를 결정할 것같지는 않다. 한 유럽연합 당국자는 “우리는 일단 조용히 영국 의회와 존슨의 행동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유럽연합은 존슨 총리의 정치적 입지 및 영국 총선 풍향 등에 끌려다니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 의회 표결을 앞두고 존슨은 영국 내 정치적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총선 실시를 검토하겠다”며 의회를 압박하기도 했다. 한 유럽연합 관리는 “회원국들은 한달 정도 말미를 더 주면 영국 의회가 재차 표결로 합의안을 비준하는데 충분할 것”이라며 1개월 연장을 시사했다.
유럽연합은 브렉시트 시한을 장기 연기해줄 경우 또다른 위험들이 분출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영국 하원이 이번 새 타협안을 놓고 일부 문구를 삭제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반영해 수정하는 등 더 큰 혼돈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원이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유럽연합 사이의 국경 통관 관세에 대한 추가협상을 요구하고 최종 비준 여부는 그 협상결과에 부치는 ‘조건부 승인’을 새로 명시하거나, 제2의 국민투표 회부를 요구할 수도 있다. 3개월 연기를 허용하면 영국이 총선 돌입 국면에 들어서면서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이 연기를 결정하더라도 조만간 영국 하원이 비준 통과를 위한 새 일정을 시작하도록 허용하는 ‘짧은 기술적 연기 기간’을 제시할 공산도 크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