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간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요한 축이었던 곳이 36시간 만에 사라졌다.”
미국 스타트업의 주요한 자금줄이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갑작스레 무너지며 소규모 스타트업들이 속수무책의 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릭 하이츠만 벤처캐피탈 ‘퍼스트마크 캐피탈’의 창립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람들이 위험에 대해 더욱 냉정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라며 스타트업 업계가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1983년 설립된 실리콘밸리은행이 10일 파산하며 이 은행의 자산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로 넘어간 상태다. 공사가 보장하는 예금은 1인당 최대 25만달러(약 3억3천만원)다. 하지만 이 은행에 예금을 맡긴 고객은 ‘개인’이 아닌 스타트업 등 큰 돈을 다루는 ‘법인’이어서 예금 대부분이 이 한도 이상인 것으로 집계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 자료를 인용해 보험한도를 초과하는 예금 규모가 총 예금의 1515억달러(약 86%)라고 전했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업계 매체인 <테크크런치>는 10일 “이 위기는 많은 스타트업을 죽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평균적 개인에게 25만달러는 큰 액수일 수 있지만, 임금을 줘야 하는 스타트업에겐 그렇지 않다”며 “임금은 비용 일부에 불과하다. (피해를 본 스타트업들은) 이제 어떠한 종류의 현금 사용도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 위기에 빠진 곳도 많다. 다른 스타트업에 임금지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 ‘리플링’은 10일에 일부 임금 지급을 완료하지 못했다.
스타트업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 ‘와이 콤비네이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조사한 400개 기업 가운데 100곳 이상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향후 30일 동안 임금을 지급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은행에 자금이 묶인 업체들은 이미 현금 확보를 위한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소매업체 ‘캠프닷컴’은 사태가 터진 뒤 판매하는 제품들을 무려 40%나 할인에 나섰다. 벤 카우프만 최고경영자(CEO)는 고객들에게 전자우편으로 할인 소식을 알리며 “불행히도 우리의 현금 자산 대부분이 무너진 은행에 있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고객인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썼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실리콘밸리은행의 갑작스러운 파산은 많은 창업자 사이에서 사업의 미래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키웠고, 거시 경제의 어려움과 자금 모집의 급격한 감소로 고군분투하던 스타트업들을 더욱 난처하게 했다”며 “지난해까지 강세장 속에서 추구했던 공격적인 성장 전략으로부터 더욱 빠르게 멀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매업체 ‘캠프닷컴’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40% 할인 공지.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로 자금이 부족해진 이 업체는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이라는 행사 코드를 입력하면 온라인 구매 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캠프닷컴 인스타그램 갈무리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