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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420억달러가 하루 만에…‘2008년 이후 최대 규모’ 은행 파산

등록 2023-03-12 13:19수정 2023-03-13 00:32

자산 276조원 ‘미 16번째 은행’
연준 금리인상에 채권가치 급락
‘뱅크런’ 이틀만에 영업중단 조치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 본사의 닫힌 출입문에 붙은 공고문을 누군가 읽고 있다. 샌타클래라/UPI 연합뉴스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 본사의 닫힌 출입문에 붙은 공고문을 누군가 읽고 있다. 샌타클래라/UPI 연합뉴스

미국 은행 규모 16위인 실리콘밸리뱅크(SVB)가 사실상 파산 상태에 들어가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파장이 확산될지 우려되고 있다. 이 은행 파산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 은행이 무너진 것이고, 미국 역사상으로는 두 번째 규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10일(현지시각)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가 발생한 실리콘밸리뱅크의 영업을 중단시키고 자산을 연방예금보험공사에 넘겼다.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제도상 예금 보장액인 1인당 25만달러(약 3억3천만원)까지 우선 지급한 뒤 나머지 자산을 처분해 예금자들에게 배분할 계획이다.

1983년 창립돼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실리콘밸리은행의 문을 닫게 한 상황은 불과 48시간 안에 급속히 전개됐다. 이 은행은 지난 8일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보유 채권을 손실을 감수하면서 매각하고 신주 22억5천만달러어치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은행은 금리 상승으로 보유한 채권 가치가 떨어지고, 신규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 발표에 주요 벤처캐피탈들이 이 은행의 건전성 문제가 본격화한다고 판단하고 고객들에게 예금 인출을 권고하는 이메일을 보내자 9일 하루 만에 예금 420억달러가 빠져나가는 뱅크런이 발생했다. <액시오스>는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뱅크런이라고 전했다. 대규모 뱅크런으로 은행 잔고는 9억5800만달러가 부족하게 됐다. 또 전날 폭락했던 이 은행 주가가 10일 아침에도 62%나 추가 폭락하자 주식 거래 정지에 이어 영업 중단 조처가 내려졌다.

실리콘밸리은행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연말 기준 2090억달러(약 276조원)다. 우선 이 은행 예금주들은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예금보험의 보호 대상이 아닌 예금 규모가 1654억달러다. <시엔비시>(CNBC) 방송은 영업 중단 조처 발표 뒤 이 은행의 샌프란시스코만 지역 점포들에는 절망스러운 표정의 스타트업 기업인 등이 몰려들었지만 닫힌 문을 열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캘리포니아주와 매사추세츠주에 17개 점포가 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은행 폐쇄로 스타트업 기업들이 광범위한 피해를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금이 없어 직원들 급여 지급조차 어려운 곳들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캐피탈의 지원을 받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과 의료 서비스 기업들 중 절반가량이 이 은행과 거래해왔기 때문에 미국 스타트업 전반이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 예금보험공사는 13일에 신속하게 예금보험에 따른 현급 지급 절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장 대상이 아닌 막대한 규모의 돈은 은행 자산 정리나 매각을 진행한 뒤에야 전액이 아닌 일부를 돌려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관심사는 실리콘밸리은행 폐쇄가 미국 또는 세계 금융시장에 얼마나 큰 파장으로 이어지느냐다.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0일 이 은행 폐쇄 사태를 지켜보며 1.1%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 금융기관들의 재무 구조가 당시보다는 상당히 건전하기 때문에 금융시장 전반의 혼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편이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금융기관들이 현재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라면서 “지금 어려움에 빠진 은행들은 아주 작은 곳들이라 금융 시스템 전반에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파산이 금융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이 금융기관들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으로 이어진다면 금융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은행 영업 중단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은행 주가 지수가 4% 급락했다.

미국 행정부는 사태 전개를 예의주하면서 파장 축소를 위한 조처를 모색하고 있다. 금융 당국이 재빨리 실리콘밸리은행의 영업을 중단시킨 것도 파장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목적이 크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11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통화해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연방준비제도(Fed)와 연방예금보험공사가 실리콘밸리 사태의 영향으로 부실화될 수 있는 다른 은행들을 지원할 수 있는 펀드를 만드는 것을 은행권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보증금을 늘려 예금자들을 안심시키는 게 대책 내용이라고 전했다. 중소 규모 은행들 사이에서 도미노 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리콘밸리은행처럼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경우 10일 15% 추가 하락한 것을 비롯해 일주일간 주가가 34%나 빠졌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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