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퍼스트리퍼블릭 지점 모습. 뉴욕/EPA 연합뉴스
미국 대형은행들이 위기감이 커진 중소은행 퍼스트리퍼블릭 은행에 300억달러(약 39조원)의 자금을 수혈하기로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미국인들은 자신의 예금이 안전하다고 믿어도 된다”고 말하며 위기 진화에 나섰다.
16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따르면 미 대형은행 11곳은 최근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신용등급이 강등된 퍼스트리퍼블릭에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이피모건, 시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가 각 50억달러,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각 25억달러, 뉴욕멜론은행, 피엔시(PNC)뱅크, 스테이트스트리트, 트루이스트, 유에스(US)뱅크 다섯 곳이 10억달러씩 모으기로 했다. 이들은 퍼스트리퍼블릭에 자신들의 자금을 예치하는 방식으로 수혈에 나선다. 본인들의 돈을 넣어도 될 만큼 퍼스트리퍼블릭이 안전한 상황이라고 보장하는 셈이다.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퍼스트리퍼블릭은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여파로 위기에 처한 곳 중 하나다. 실리콘밸리은행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예금인출(뱅크런) 우려가 제기됐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15일 퍼스트리퍼블릭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 수준으로 낮추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동성 공급이 결정되면서 미 재무부와 연준, 예금보험공사 등은 성명을 통해 “대형은행들의 지원을 환영한다”며 “은행 시스템의 회복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외신들은 옐런 장관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제이피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가 논의한 끝에 대형은행들의 결정이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로 인해 장중 30%대까지 폭락했던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유동성 공급 소식이 전해지며 전날보다 10% 가까이 오르며 장을 마감했다.
옐런 장관은 16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견고하다”며 최근 발생한 은행 위기를 수습하려 노력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그들의 예금이 필요할 때 그곳에 있다는 확신을 가져도 된다”며 “이번 주 나온 조치들은 예금자의 저축을 안전하게 보장하기 위한 우리의 단호한 약속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옐런 장관은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때처럼 보호 한도 이상의 모든 예금이 보호받느냐는 질문에는 “보장되지 않는 예금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을 때 시스템상의 위험과 중대한 경제적·금융적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에만 그러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정 없이 모든 예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로이터> 통신도 이 발언이 “특별 보증의 한계에 대한 당국의 견해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위기설에 휩싸였던 크레디스위스은행은 스위스중앙은행이 최대 540억달러 규모의 지원을 약속하면서 주가가 다소 회복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생명선을 확보한 크레디스위스는 이제 고객들을 되찾아와야 한다”며 고객들에게 은행의 안정성을 설득하고 이탈을 막는 것이 사태 진화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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