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거래 흐름도
싼 엔화 통해 투기자산에 수천억달러 유입
엔 급등하면 큰 손해…위기 가능성은 낮아
엔 급등하면 큰 손해…위기 가능성은 낮아
엔 약세를 틈탄 투기적인 엔 캐리 거래가 급증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캐리 거래는 엔이나 프랑스 프랑 등 저금리 통화를 빌려 미국과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고금리 국가의 통화·자산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 금융기법으로, 헤지펀드가 주로 활용한다. 현재 엔의 정책금리는 0.25%로, 미국과 유럽연합에 비해 각각 5%, 3.25%나 낮다.
전문가들은 엔 캐리의 규모에 대해 여러 통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지만 대략 1000억(약 930조원)~1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JP 모건은 보고서를 통해 규모를 3310억달러로 추정했다. 지난달 말 바클레이스 캐피탈이 내놓은 분석을 보면, 엔 캐리 규모는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엔 캐리는 엔 약세의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엔을 팔아 다른 통화·자산을 구매하면서 엔 공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최근 몇 년 새 차입된 엔 자금이 중국·인도의 부동산, 미국의 주식시장은 물론 타이 밧화나 아프리카 국가의 채권 등 (세계의) 거의 모든 투기 자산에 유입됐다”고 전했다.
엔 캐리 거래가 늘어나면서 시장의 관심은 98년 러시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당시 엔이 사흘 새 18%나 오르면서 헤지펀드들은 공황 상태에서 엔 캐리 자금 청산에 나섰다. 이 와중에 세계적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는 파산했다. 지난해 중반, 신흥시장 증시는 일본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엔 캐리 자금이 이탈하자 급락했다.
아직까지는 이런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낮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일본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높일 가능성이 불투명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엔 캐리의 ‘폭발’ 가능성이 낮아, 현재 엔 급상승으로 입을 수 있는 헤지펀드의 손해를 충당해줄 보상보험료도 매우 낮다. 이 때문에 많은 헤지펀드들은 캐리 거래로 이익을 보면서 동시에 엔 강세에 대비한 보험도 구입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일본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열기가 식지 않는 점도 위기 가능성을 낮춘다. 신문은 “이런 자본 유출에도, 일본 총 가구가 보유한 부의 93%는 여전히 엔 자산”이라면서 “(투자자들이) 엔 캐리에 흥미를 잃으려면 적어도 일본 금리가 2%포인트 이상 더 올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페섹은 위기 가능성이 낮다고 전제하면서도, 엔 캐리를 ‘폭발’시킬 소재로 달러화 폭락, 테러 공격, 조류독감의 확산 등을 들었다. 그는 98년과 달리 헤지펀드가 훨씬 늘었기 때문에 엔화 급등에 대한 취약성도 더욱 커졌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현재 투기꾼들이 광적으로 일본 현급인출기 앞에 줄 서 있기 때문에, 이 싼 자금이 마를 경우 세계의 거의 모든 자산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즉, 엔이 ‘신용세계의 현금 자동인출기’로 기능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부드럽게 퇴로를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조용승 한국은행 국제동향팀장은 “이른 시일 안에 (엔 캐리 자금의) 청산이 이뤄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면서도 “전세계적인 청산이 이뤄진다면 국내 투자자금이 일거에 회수되면서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조용승 한국은행 국제동향팀장은 “이른 시일 안에 (엔 캐리 자금의) 청산이 이뤄질 가능성은 많지 않다”면서도 “전세계적인 청산이 이뤄진다면 국내 투자자금이 일거에 회수되면서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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