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금융위기에 맞서는 국가차원의 해법으로 ‘영국식 모델’이 각광받고 있다.
은행의 부분적 국유화와 은행간 지급보증 확대를 뼈대로 하는 영국의 구제금융방안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 독일, 미국 등이 영국식 모델을 뼈대로 한 구제금융 계획의 청사진을 발표했거나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 국유화 방침에 강력한 반대 태도를 내비쳐 왔던 독일이나 전통적으로 국가의 시장개입을 기피해온 미국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앞서 10일 독일 재무부는 “은행 국유화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12일 유로존 국가들의 합의에 따라 800억유로에 이르는 은행 지분 매입에 나서게 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12일 유로존 국가 정상들과의 회동을 끝낸 뒤 “결코 쉬운 합의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각국이 다른 전통과 규제감독 기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금융위기를 맞은 현 상황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며 “시장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목적이 합의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미국도 정부 당국이 이런 방안을 채택하도록 하는 의회 차원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 위원장인 찰스 슈머 의원은 “재무부가 하루 속히 부분적 은행 국유화 시스템을 포함하는 은행 지분매입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며 “시장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3일 전했다. 또 은행의 부분적 국유화를 “자본주의 시스템에 역행하는 조처”로 보는 이들조차, “신중하고 일시적 조처로 행해져야 한다”며 간접적 지지를 밝히고 있다.
13일 스코틀랜드 왕립은행과 에이치비오에스의 지분을 취득한 영국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의 전제조건으로 고위 경영진에게 올해 현금 보너스를 지급하지 말 것 등을 요구했다. 은행들이 감수해야 할 대목도 있는 셈이다.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의 최고경영자인 프레드 굿윈은 은행이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까지 이른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안에 반대하는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도 영국식 모델에는 후한 점수를 줬다. 소로스는 12일 “은행 재자본화 계획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는 긍정적 조처”라며 “유럽 국가들이 마침내 현 시기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환영했다. 그는 미국 재무부의 7천억달러 구제금융안에 대해선 “헨리 폴슨의 계획은 발상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혹평했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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