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시장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중국 증시가 과열되고, 세계 부동산 시장도 금융위기 이후 최고의 수익률을 보이며 거품 우려도 나온다. 경기 변동의 중요한 척도이자, 상품 시장을 좌우하는 석유값이 대표적이다.
석유값은 23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국제 석유값의 기준인 브렌트유가 3.4% 오른 64.85달러가 됐다. 지난 12월9일 이후 최고가이다. 지난 1월 45달러 안팎 최저치에서 20% 이상 올랐다.
석유값을 놓고는 전망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주목할 부분은 투기자본들은 석유값 상승에 도박을 거는 반면, 실물을 다루는 생산업자들은 비관적이라는 점이다.
투기성 자본인 헤지펀드들은 브렌트유의 2억6500만배럴에 상당하는 선물과 옵션에 가격상승 베팅을 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세계 석유 수요의 3일치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는 사상 최대의 석유값 인상 베팅이라고 신문은 평가했다. 반면 생산업자들은 향후 석유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보고, 약 5억배럴의 브렌트유 선물을 매각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석유값이 오를 것이라는 배경에는 공급량 축소와 수요 확대 움직임이 있다. 미국 연방고속도로청은 지난 2월 미국인들이 약 2211억마일을 운전해, 전년 동기에 비해 2.8%가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중동에서 계속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공습 등도 최근 석유값 상승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원유의 배달처인 미국 오클라호마 쿠싱의 원유비축기지에서는 최근 80년 이래 최대 비축량을 보이다가 이번주에 하락으로 돌아섰다고 에너지정보청이 밝혔다. 이를 두고 미국의 석유 공급 과잉이 이제 축소되는 신호라고 중개인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가솔린 비축량도 올해 들어 최저를 기록했다. 정유업자들은 5월 마지막 월요일인 미국 현충일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여름 운전기간에 앞서 생산을 늘렸으나, 현재는 생산을 줄이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상품서밋에 참가한 헤지펀드 매니저 등은 석유값이 바닥을 쳤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 회의에서는 올해 3분기에 브렌트유가 80달러 이상으로 오른다는 예측이 나왔다.
하지만 수요 증가 징조에도 불구하고 정유업자들이 공급을 늘리지 않는 것은 향후 석유값에 대한 엇갈린 전망을 말해준다. 최대 석유공급국인 사우디가 여전히 생산을 줄인다는 명시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비축량이 줄었다고는 하나 미미하다. 최근까지 15주 연속 는 미국의 비축량은 여전히 80년 만에 최대치이다.
실물을 다루는 생산업자들은 비관적이다. 비피(BP)의 최고경영자 밥 더들리는 “더 낮은 가격으로 더 길게 간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라고 말했다.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 렉스 틸러슨도 석유업계는 적어도 몇년 동안 저가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쪽과 실물 쪽이 석유값에 대해 전망이 다른 것은 시사적이다. 헤지펀드 등 투기적 자본들이 석유값 인상에 베팅하는 것은 자신들 쪽으로 들어오는 넘치는 돈의 유동성을 반영한 결과다. 석유값을 올릴 수 있는 조그마한 변화에도 민감하다. 헤지펀드들이 석유값 인상에 기록적인 베팅을 한 것은 급속히 세력을 확장한 이슬람국가(IS)가 선포된 6월이다. 하지만 석유값은 그 뒤 오히려 60% 이상 급락했다.
반면 실물을 다루는 생산업자들은 실질적인 수요과 공급에 치중한다. 기본적으로 석유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아직 바뀌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석유값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시장 변동성이 경기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몸부림이라고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오동잎 하나로도 천하의 가을을 알 수 있지만,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도 아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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