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외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안화를 세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전후 국제경제에서 환율과 관련한 최대 사건은 1985년 플라자 합의이다. 그해 9월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5개국 재무장관은 달러 평가절하의 국제적 공조를 합의했다. 이 합의는 결과적으로 일본에는 장기불황으로 가는 문을 열었고, 미국에는 세계 경제 패권의 고삐를 다시 잡는 단초를 줬다.
미국 달러는 앞서 5년 동안 50%나 평가절상됐다. 70년대의 초인플레를 잡기 위해 처방한 고금리가 달러 가치의 상승을 초래했다. 미국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미국 기업들의 비명이 터져나왔고, 경상수지 적자가 쌓여갔다. 미국은 일본의 팔을 비틀어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달러 가치는 그 직후부터 수직낙하했고, 엔과 마르크는 수직상승했다. 플라자 합의 때 1달러에 242엔이던 엔은 1986년말에는 153엔으로 가치가 46%나 올랐다. 1988년말에 120엔대까지 올랐다. 플라자 합의로 시작된 엔 강세는 길게 보면 사상 최고치인 달러당 75.58엔을 기록한 2011년 10월31일까지 25년간이나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엔고로 일본 경제가 수축되자, 일본 정부는 돈을 푸는 경기확장 정책을 반복했다. 특히 건설토목 분야 부양에 치중해 부동산 버블을 중심으로 자산 버블이 심화됐다. 가치가 높아진 엔은 이런 자산 버블을 더욱 재촉했다. 자산 버블이 꺼지면서 일본은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다.
중국이 지난 11일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를 하루에 1.86%나 떨어뜨리며 20년 동안 진행돼온 위안화 절상 추세를 반전시켰다. 1994년 위안화가 달러에 연동되는 관리변동환율제가 시행된 이후 위안화는 달러당 8.7위안에서 시작해 21년 동안 6.2위안대까지 절상됐다.
플라자 합의와 이번 위안화 절하의 배경은 세계경제에서 일본과 중국 경제의 약진이었다. 급속히 몫을 늘린 일본과 중국 경제에 대한 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정 과정과 내용은 정반대이다. 일본은 절상을 강요받았고, 중국은 절하를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조처로 일단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양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위안화가 2010년부터 지난 6월까지 26%나 올랐다며 스위스프랑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강세 통화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중국 위안화의 절상을 주장하던 목소리가 없어졌고, 오히려 이번 조처를 시장 친화적이라고 평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위안화 절하는 성장률이 7%로 낮아지고, 7월 수출이 전년 대비 8%나 줄어드는 중국에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실리를 준다. 중국은 이번 조처를 통해서 미국 등이 요구하던 시장에 환율을 맡기는 변동환율제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명분을 얻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위안이 국제통화기금의 긴급인출권(SDR)을 구성하는 공식 준비통화로 가는 길을 닦으려 한다.
문제는 중국 경제이다.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자산 버블을 촉발했다. 반면 이번 위안화 절하는 현재 터져나오는 중국의 자산 버블 속에서 나왔다. 이 조처는 중국 자산 버블을 연착륙시킬 수 있을까? 수출을 다시 부양하고, 성장을 다시 가속시킬 수 있을까? 중국의 수출과 성장이 회복된다고 해도, 이것이 한국 등을 질식시키는 ‘근린궁핍화’로 귀결되지 않을 수 있을까?
플라자 합의는 일본 입장에서는 타율 내지 강요에 가까운 것이었다. 반면 이번 위안화 절하는 중국의 주체적인 대응이다. 플라자 합의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통화 전면전이었다면, 위안화 절하는 중국이 미국 등 세계를 상대로 한 저강도 통화전쟁이다. 이 전쟁이 모두의 윈윈 게임이 될 수 있을지는 우선 중국 경제의 연착륙에 달려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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