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시가 연일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는 가운데,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금융시장이 상투를 잡은 게 아니냐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모습. 뉴욕/AFP 연합뉴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미국 증시 등 국제 금융시장은 과연 상투를 잡고 있는 걸까? 이를 가늠하려면 채권시장과 그 시장 큰손들의 움직임을 봐야 한다.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최대 동력은 중앙은행의 금리이고, 이에 가장 민감한 쪽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10년 국채 금리는 지난 10일 장중 9개월 만에 최고치인 2.6%로 올랐다. 이는 미 국채의 최대 큰손인 중국이 미 국채 매입 축소나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는 중국 관리들의 말을 <블룸버그>가 보도하자, 시장에 ‘팔자’ 주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중국 쪽에서 나온 미 국채 보유 축소 움직임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자신들에게 가하는 무역압력에 맞서는 카드로 꺼내들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금리인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 분석이다.
유명한 채권왕 빌 그로스는 자신의 펀드들은 미 국채값이 하락하는 데에 투자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로스의 경쟁자인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CIO) 역시 중앙은행의 정책이 ‘양적 옥죄기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며, 채권시장 침체 전망에 가세했다. ‘양적 옥죄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의 돈 풀기 정책인 ‘양적완화’에 대비되는 말로, 중앙은행들이 이제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려고 금리인상 및 채권매입 중단·축소에 나설 것이란 뜻이다.
건들락은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2.63%를 돌파하면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금리 수준은 기술적 저항선을 깨는 것이고 팔자세를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그는 예측했다. 그로스는 “채권값 하락장세가 오늘 확인됐다”고 단언했다.
채권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 연준이 채권 매입 등을 통한 돈 풀기 정책인 ‘양적완화’를 실시하면서 30년 만의 최대 상승장세를 누려오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은 채권 금리가 사실상 마이너스로 돌아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채권시장뿐만 아니라 전세계 자산시장의 추세는 기로에 서게 됐다.
미 연준은 재닛 옐런 전 의장 아래서 5차례나 금리를 올렸고, 올해에도 3차례의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연준의 이런 금리 인상에도 채권금리는 한동안 최저치를 유지하며 채권값은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하지만 새해 들어 채권값이 드디어 흔들리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추세를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6개월 만에 최고치인 0.54%로 올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채권매입 규모를 매월 300억달러에서 1월부터는 절반으로 줄인다. 일본 국채 10년물의 금리는 0.08%로 올라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다. 중국이 미 국채 매입 축소나 중단을 고려하겠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결국 채권시장이 비로소 금리 인상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제 각국 중앙은행이 이미 시작했거나 고려하고 있는 돈 거둬들이기가 어떻게 시행돼, 언제 효과가 본격화되느냐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앙은행 수장들의 일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과 같다”는 한 서방 중앙은행 총재의 말을 전했다. 비행기가 항상 공중에서 비행할 수 없고, 착륙할 때는 충격 없이 지상에 미끄러지듯 내려와야 하는 것처럼 금융위기 이후 풀린 돈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 없고 그 돈을 거둬들일 때는 충격 없이 매끄럽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앞으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에는 몇가지 변수가 있다. 먼저 물가 오름세다. 물가 오름세인 인플레이션이 커지면 중앙은행들의 금리인상 보폭은 빨라질 것이고, 이는 금융시장 급락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대적인 감세정책이 경기를 부양해 인플레를 촉발할 것으로 보는 분석가들이 많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또 브렌트유가 11일 한때 70달러를 넘는 등 오르는 석유값도 인플레 요인이다.
금리인상은 또 미국의 연방부채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 국채 금리가 1.8%에서 3.6%로 두 배 오르면, 향후 10년 동안 미 연방부채는 2700억달러에서 712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미 의회예산처는 분석했다.
기술과 생산력의 제고로 인플레가 제어되는데다, 경제에 치명적인 빠른 금리인상을 중앙은행들이 취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시장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금리가 안정화될 것이라고 계속 믿는 낙관론이 커질수록, 금융시장의 변동성 잠재력은 축적될 것이다.
정의길 국제에디터석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