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에서 열린 제2회 디지털차이나서밋에 놓인 화웨이 부스 모습. 푸저우/연합뉴스
1982년 당시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인민해방군의 감군을 지시했다. 국방 분야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개발에 자원을 집중하려는 조처였다. 군복을 벗는 50만명 속에 43살의 런정페이가 있었다. 그가 감군 대상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런정페이는 입대 이후 많은 업적을 쌓았으나, 아버지의 국민당 전력 때문이었는지 공산당원이 되지도, 임관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퇴역한 그는 선전의 한 석유 회사에서 조달업무를 담당하다가 1987년에 뒤늦은 창업을 했다. 2만위안(당시 약 550만원)의 자본금에 동업이었다. 그 전해에 덩샤오핑은 수입된 기술에 대한 의존을 줄이라는 ‘863프로그램’을 발족하고, 국내 기업들에 대한 정부 발주를 늘렸다. 런정페이가 창업한 화웨이는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별로 받지 못한 채, 홍콩의 한 바이어를 상대로 서버 스위치의 설치와 제작을 했다. 정부의 혜택으로 쥐룽이나 중싱(ZTE) 같은 거대 전기·전자회사가 출현할 때 화웨이는 그저 중소기업에 머물렀다. 당연히 정부가 제공하는 저리의 관치금융 혜택도 없었다.
화웨이는 수입제품을 팔아서 이익을 남겼다. 대신에 런정페이는 수입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할애했다. 창업 6년 만인 1993년 화웨이는 디지털 통신 스위치인 시앤시8(C&C8)을 자체 제작해, 기존 제품보다도 3분의 1 가격으로 판매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화웨이는 이때부터 중국 정부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그의 군 전력 때문인지는 불명확하다. 그보다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국 경제와 해외진출이 배경이었을 것이다. 중국 정부의 데이터센터 건립, 4G 네트워크 통신 건설 등에 참여했고,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맞춰 아프리카 국가들의 통신 건설에 참여했다. 지난해 화웨이는 애플을 누르고 세계 2위의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올랐고,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72위를 차지했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 화웨이의 연 매출은 1085억달러다. 그 전해보다 21%가 성장해, 여전히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화웨이가 자체 기술을 어느 정도 개발했는지는 불투명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화웨이 기술의 많은 부분은 외국 회사 제품을 분해해서 그 생산방식을 알아내 복제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얻은 것이다. 일종의 기술 절취라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화웨이의 성공이 정부가 제공한 지원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중국 기업이 정부의 지원 속에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했음에도, 화웨이 같은 성공을 일궈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화웨이가 중국 정부에 완전히 독립됐다고 볼 수도 없다. 런정페이는 화웨이 주식의 1.42%만을 소유하고 있어, 화웨이는 본질적으로 런정페이 소유 기업이 아니다. 종업원들이 주식을 다량 소유한 종업원 지주제의 형식이지만, 사실상 정부 소유라는 분석이 많다.
미국이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으라고 동맹국들에 압박 중이다. 5G 네트워크 구축에서 화웨이를 참여시키면, 중국에 의해 국가안보가 위협받는다고 주장한다. 화웨이의 5G 통신장비에는 백도어(인증 없이 전산망에 침투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될 수 있다고 주장하나,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미국과 정보 공유를 하는 이른바 ‘파이브 아이스’로 불리는 영어권 국가들인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는 미국의 요구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이다. 하지만 이 중 영국은 갈등하고 있다. 영국의 국가안보위는 지난달 화웨이가 영국의 5G 네트워크 구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최종 결정은 정부에 맡겼다. 중국은 영국에 화웨이를 불공정하게 대하면 보복이 있을 수 있다고 압박 중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직접 나서서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일축했다.
한국에도 미국의 압박은 가해지고 있다. 명심할 것은 화웨이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양자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대 나머지 나라라는 1 대 다자 문제이다. 화웨이 제품에 보안 결함이 있다면 당연히 배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화웨이를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 거래는 사업자들이 결정할 문제이다. 이는 대부분의 국가가 취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를 우리가 먼저 덥석 입에 물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감자가 식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우리가 먼저 뜨거운 감자를 입에 무는 시범을 보여야 한다는 철없는 주장이 나온다. 철이 없다기보다는 나라 망하라는 주문이다.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