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6월15일 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과로사 대책 마련과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노숙 투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후베이성의 단장커우직업기술학교에 재학 중인 열일곱살 위밍의 전공은 컴퓨터다. 하지만 그가 반강제로 배치된 공장 실습에서 투입된 업무는 온종일 무거운 상자를 반복해서 옮기는 일뿐이었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을 6일 앞둔 지난 6월25일, 그는 고향에서 1400㎞ 떨어진 광둥성 선전의 한 전자부품 공장 기숙사 건물 6층에서 떨어져 숨졌다. 학교당국과 공장 쪽은 위밍의 동료들을 입단속했고, 이 소식은 인터넷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며칠 뒤 친부가 공개한 유서에 따르면 위밍은 하루 11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반복했으며, 열흘 내내 밤샘 야근을 했다.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네차례에 걸쳐 휴가를 신청했지만 관리자는 이를 무시했다.
해당 공장에선 정규직, 파트타임, 직업학교에서 보낸 실습생, 위구르족 노동자 등 네 종류의 근로계약이 이뤄졌다. 노동시간은 실습생과 위구르족이 가장 길었고 그다음이 정규직, 파트타이머 차례였지만
임금은 정규직, 파트타이머, 위구르족, 실습생 차례였다. 권리가 약할수록 장시간 노동의 압박도 커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장시간 노동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일반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옥스퍼드 사전에도 등록됐다는 ‘과로사’(가로시)라는 개념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지난해 발간된 <일본 과로사 방지 백서>를 보면 2019년 파트타이머 포함 전체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1644시간, 풀타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연 1978시간이었다. 그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1726시간이었다. 일본에서도 과로사 방지법이 제정되는 등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후생노동성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일본 내 이주노동자들의 과로 사망률은 일본 국적자의 두배 이상이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노동권을 가진 이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대만과 홍콩 등 동아시아 내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난다. 얼마 전 출간한 <과로의 섬>(황이링·까오요우즈 지음, 장향미 옮김)을 보면, 2018년 대만의 연간 노동시간은 2135시간을 기록했다. 이 책은 취약 노동자들과 청년 세대에게 노동강도가 심화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홍콩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홍콩특별행정자치구 입법회 보고서를 보면, 2018년 홍콩의 주간 노동시간은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악명 높은 ‘과로 국가’들보다 길고, 특히 숙련도가 낮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서 심하다.
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긴 나라로 악명이 높다. 2019년 오이시디 통계를 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35개국 평균보다 334시간이 많은 2060시간을 기록했다. 장시간 노동은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4년 분당서울대병원 뇌신경센터가 한국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뇌출혈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9~12시간 일하는 노동자는 하루 평균 4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뇌출혈 발생 위험이 38%, 13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94% 증가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2016년 한해 우리나라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는 최소 2610명이었다. 업무나 직업요인에 의한 자살도 연 400~5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심혈관질환과 뇌혈관질환, 허혈성 심장질환,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해 돌연사와 과로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장 기숙사에서 뛰어내린 열일곱 중국 노동자의 죽음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유교 문화를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가족적인 회사 문화’가 낳은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 노동 통제가 높은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심화된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일터는 실적을 강조하는 문화와 절대적 인원 부족, 과도한 업무량으로 점철되어 있다. 10명이 해야 할 일을 7명이 하고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하다 보니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자발적 과로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과로사회 중국’ 때리던 한국 언론
국내 과로사 이슈에는 조용한 ‘모순’
최근 동아시아 각국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에 맞서 소극적인 저항을 펼쳐왔다. 2019년 봄 중국 아이티(IT)기업 노동자들은 996제(아침 9시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일과를 주 6일간 지속하는 관행)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호응하자, 자본과 정부가 반응했다. 마윈 같은 자본가들은 996제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과로사 문제가 연달아 공중의 화두에 올랐고, 중국 정부 역시 적극 대처하겠다는 모양새를 취해야 했다.
지난 6월14일 텐센트그룹 산하 게임개발사는 직원들에게 수요일 저녁 6시 강제퇴근과 연장 근무 시 밤 9시를 넘길 수 없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는 다른 아이티기업들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는 기업의 자발적 조치가 아니다. 이대로 뒀다간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 감지한 정치권력이 브레이크를 걸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보수언론과 정치권이 중국을 보는 시각에 의구심이 생긴다. 예컨대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초대 위원장 장병규는 2019년 10월 몇차례에 걸쳐 중국 빅테크의 장시간 노동 사례를 소개하며 아이티업계에 주 52시간 상한제를 적용해선 안 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한창 996제 반대 캠페인과 과로사 이슈가 불거질 때 열띠게 보도하던 언론들은 노동시간 감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국내 이슈에 있어선 철저히 반대편에 섰다. 하나같이 자본에 유리할 땐 배우자고 하고, 불리할 땐 남 일 취급이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주 120시간’ 발언 역시 이런 노동 배제적 시각이 낳은 해프닝이다.
이달 초 문재인 정부는 적용 대상을 크게 축소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 안이 규정한 ‘직업성 질병’에서 뇌졸중 등 뇌심혈관계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이 빠졌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행렬을 방조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법을 만들고 있고, 또 다른 위밍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