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가격 급등이 전력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현실화된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북유럽의 수력발전용 물 부족으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해 교통·난방 분야도 ‘탄소 배출권’ 거래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유럽연합(EU)의 야심 찬 탄소 감축 방안도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3일(현지시각) 영국과 독일·프랑스 등에서 시작된 전력 위기가 수력발전 의존도가 높은 북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최근 전력 요금이 한해 전에 비해 최고 5배까지 치솟으면서 산업계는 물론 일반 가정 경제에도 큰 부담을 안기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인근에 사는 대학생 베가르 바르들라는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달 전기료가 1400크로네(약 19만원)로, 이달보다 2배나 오를 것 같다”며 “전기료 때문에 저축한 돈을 써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에너지 기업 포르툼의 거래 책임자 마츠 페르손은 “유럽의 가스 재고 부족, 석탄 등 다른 화석연료 가격 상승, 강수량 감소에 따른 수력발전용 물 부족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전력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 수력발전 시설의 수위는 지난달 20일 기준으로 전체 저장 용량의 52.3%에 불과해, 200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스웨덴은 52년 된 석유 발전소의 가동률을 높이는 조처까지 취할 수밖에 없었다. 북유럽의 풍부한 수력 자원을 활용한 전력망은 영국, 독일, 덴마크 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북유럽의 전력 부족은 유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전력 위기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해 시작됐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러시아가 공급량 제한 등의 조처를 취하면서였다. 그에 따라 지난달 기준 천연가스 가격은 올해 초에 비해 250%나 폭증하며 위기가 본격화했다. 여기에 올여름 무더위에 따른 에너지 사용 증가, 풍력발전 차질까지 더해졌다고 <마켓워치>가 지적했다.
유럽의 에너지 가격이 일제히 급등하는 가운데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2일(현지시각) 인상된 가격표를 붙인 주유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오스트리아는 이날 환경단체 등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탄소세 부과 방안을 내놨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국민당·녹색당 연립정부가 몇달의 협상 끝에 내놓은 과세안은, 내년 7월1일부터 배출 탄소 1t당 30유로(약 4만1천원)의 세금을 부과하고 2025년부터는 55유로(약 7만5천원)로 올리는 내용이다. 정부는 국민들의 부담을 고려해, 1인당 100~200유로(약 13만7천~27만4천원)의 ‘기후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안도 함께 내놨다. 이에 대해 그린피스 등은 “너무 부족하고, 늦었으며, 비효율적인 과세안”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세금재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유럽 16개국이 탄소세를 도입했으며 스웨덴의 탄소세가 배출 탄소 1t당 108.81유로로 최고다. 오스트리아의 과세안은 이에 크게 못 미칠 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한 2030년 기준 100유로와도 거리가 있다.
탄소 배출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후퇴하는 모습은 유럽의회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최근 유럽의회는 교통수단과 난방에까지 탄소세를 부과하는 유럽연합의 계획이 저소득층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14일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55%로 줄이기 위한 입법안인 ‘피트 포 55’(Fit for 55)를 발표했는데 이를 완화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또 천연가스 업계가 ‘수소 전환’을 준비하는 걸 전제로, 보조금 지급 중단을 2027년 이후로 늦추는 방안도 최근 유럽의회 산업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의 탄소 배출 감축안이 확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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