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 콜린 파월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갖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18일 숨진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이 코로나19 백신의 효력에 대한 엉뚱한 논란에 휘말려 들었다. 파월이 코로나19 백신을 모두 맞았지만, 돌파 감염된 뒤 끝내 숨졌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논쟁이다.
보수 매체인 <폭스 뉴스>의 존 로버츠 앵커는 파월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인 18일 트위터에 “파월이 코로나19 돌파감염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백신이 얼마나 장기적으로 효과적일지 새로운 우려를 제기한다”고 적었다. 앞서 파월의 가족은 고인이 “코로나19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졌다면서, 백신은 이미 접종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로버츠의 주장은 백신의 효능에 물음표를 다는 것으로 비쳐지면서 즉각적인 반발에 부닥쳤다. 파월이 84살의 고령인 데다, 다른 질병을 갖고 있었기에 코로나19에 더욱 취약했던 것이지, 백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쏟아진 것이다. 미국 언론은 파월이 감염으로부터의 보호력을 떨어뜨리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증을 앓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 파월이 파킨슨병도 갖고 있었다고 그의 비서실장 페기 치프리노가 말했다고 <시엔엔>(CNN)이 전해다.
논란이 확산되자 로버츠는 즉각 트위트를 삭제했다. 이후 추가로 글을 올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백신 반대’로 해석했기 때문에 삭제했다”며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 자신은 ‘일상적인 삶’으로 복귀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될 걸로 믿어 백신을 맞았으며, 사람들에게도 백신 접종을 권장해왔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파월의 사망은 오히려 백신 접종률을 높여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월과 같은 고령자·기저질환자들은 코로나19에 감염 또는 돌파 감염됐을 때 면역력이 낮으므로, 이들이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을 낮추기 위해 사회 전체적으로 백신 접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워싱턴대 의대 교수인 조너선 라이너는 <시엔엔>(CNN)에 “파월은 80살이 넘었고, 암(골수종)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암 치료는 그를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고령의 파월이 다발성 골수종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을 이겨내기 힘들었고, 골수종 치료로 인해 면역 체계가 더욱 약화됐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네이처>에 실린 한 연구는 다발성 골수종 환자들 가운데 코로나19 백신에 충분한 반응을 보인 이는 45%에 그쳤다고 보고했다. 라이너 교수는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젊은층은 감염을 잘 이겨낼 수 있지만 자신들이 파월과 같은 이들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면서 백신을 접종해야 할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파월의 죽음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백신은 효과가 없다’가 아니라, 백신은 광범위하게 작동할 때 최고의 효과를 낸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를 보면, 지난 12일 기준으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미국인 1억8700만명 가운데 돌파감염으로 숨진 이는 약 7000명으로 확인된다. 숨진 이들 가운데 절대 다수인 6000명이 65살 이상 고령이다. 돌파감염으로 사망에 이르는 비율이 0.004% 미만인 셈이다. 트위터에는 유명인들 가운데 돌파감염으로 숨진 이는 파월이 거의 처음이라면서, 그 자체가 백신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의견도 올라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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