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발전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정부의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사실상 확정됐다. 사진은 19일 인천 서구 경인아라뱃길에서 바라본 서구지역 발전소 모습. 인천/연합뉴스
“자민당은 원전의 신증설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인가?”(기자)
“전력의 안정 공급이나 가격 등의 면을 생각할 때 재생가능에너지 하나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원전의 재가동이다.”(기시다 후미오 총리)
18일 도쿄 지요다구 우치사이와이초의 일본기자클럽. 31일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오전 10시 시작된 각 정당 대표 토론회(당수 토론) 석상에서 핵심 논점으로 떠오른 것은 탈탄소와 탈원전이라는 ‘두개의 난제’를 앞에 둔 일본의 에너지 정책이었다. 일본은 한국처럼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뤄낸다는 계획이지만,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참사라는 악몽을 겪은 탓에 ‘탈핵’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이 매우 높다. 전임 민주당 정권은 이를 받아들여 새 원전을 짓지 않고, 노후 원전을 점차적으로 폐기해 “2030년대엔 탈핵을 완성한다”는 안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4년 “원전의 비중을 20~22%로 유지하겠다”는 내용의 ‘에너지 기본계획’을 확정하며 ‘탈핵’이란 사회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만다. 기시다 신임 총리도 ‘새 원전을 건설하느냐’는 질문엔 즉답을 피한 채 “(일단 멈춰 있는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탈원전과 탈탄소란 ‘두 마리 토끼’ 잡기는 일본만의 고민이 아니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막 기지개를 켜려는 세계 경제를 ‘에너지 위기’가 강타하면서 세계 각국이 이 난제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세계적으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력의 일정 부분을 감당하는 ‘기저부하 전원’이 될 수 있는 원전을 일정 정도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대세지만, 탈핵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길이기에 각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비상한 관심을 모은 것이 프랑스와 영국의 움직임이었다. 전체 전력의 70%를 원전에서 생산하는 ‘원전 대국’ 프랑스는 2014년 6월 원전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기로 했었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집권한 뒤인 2017년 11월 목표 연도를 2035년으로 늦췄다. 프랑스는 지난 12일 한발 더 나아가 300억유로(약 41조원) 규모의 산업 재활성화 계획인 ‘프랑스 2030’에 소형 원자로 개발에 10억유로(약 1조3800억원)를 투자하는 안을 포함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도 16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영국 정부의 ‘넷 제로(Net 0) 전략’의 중심에 원전이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전망 기사를 내놓았다. 영국의 노후 원전들은 2035년께 거의 수명을 다해 원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선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
주요국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핵심 이유는 재생가능에너지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는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전력 생산에서 2000년 36%였던 석탄의 비율을 2019년 5%까지 줄이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원전 비중은 21%)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올여름 이후 바람의 양이 크게 줄며 풍력 발전량이 20%나 감소했다. 그 영향 등으로 15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전력 1㎿h당 도매 가격은 1년 전보다 6배나 높은 230유로(약 31만6000원)까지 올랐다.
한국은 탈원전과 탈탄소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계획이다. 과격한 듯 보이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신고리 5·6호기를 끝으로 신규 원전을 짓지 말고 60여년에 걸쳐 원전 비율을 조금씩 낮춰 탈핵을 이뤄내자는 온건한 안이라 평가할 수 있다. 파티흐 비롤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2050년 탄소중립이란 ‘목표 달성’을 위해선 원전 비중이 2050년께엔 세배 정도 높아져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장기적으로 탈핵 하자’는 정부 계획과 크게 상충되지 않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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