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이튿날인 26일 워싱턴 인근 조지타운의 성삼위일체교회를 방문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중국 및 러시아와의 갈등 심화로 외교적 곤경에 빠져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연말이 가까워 오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생각하는 외교정책상의 가장 큰 성취는 뭐였고, 가장 큰 실패인 아프가니스탄을 통해선 무엇을 배웠나.”
“너무 큰 질문이다. 그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대통령과 논의해보겠다.”
지난 14일 백악관 정례 기자회견에서 ‘뜻밖의 질문’이 쏟아지자 달변인 젠 사키 대변인이 즉답을 하지 못한 채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한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외교 분야에서 거둔 성취가 무엇인지 묻자 말문이 막힌 것이다.
전세계는 오랫동안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을 경험한 ‘외교 전문가’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해 트럼프 시절의 혼란을 끝내고 질서를 회복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보인 외교 행보는 8월 말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상징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보이는 ‘지나친 소명의식’이 도리어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월19일 뮌헨 안보회의에 참가해 현재 인류가 민주주의(democracy)와 권위주의(autocracy)의 ‘변곡점’(inflection point) 위에 있다며 “로마(이탈리아)부터 리가(라트비아)까지 유럽연합(EU)의 파트너들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중의 전략 갈등을 ‘선악 구분’이 전제돼 있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로 파악하면 외교적 타협의 여지는 사라지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특성이 잘 드러난 장면이 지난 3월17일 <에이비시>(ABC) 방송에서 이뤄진 ‘충격적 문답’이었다. 중국과 경쟁에 집중하려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정적을 죽이는 살인자’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것이다. 지난 9~10일엔 78억명의 세계인을 참가국(44억명)과 불참국(34억명)으로 가른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열어 ‘변곡점’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재차 강조했다. ‘악’으로 몰린 중국이 거칠게 항의하며 미-중 관계는 한층 더 악화됐지만, 정작 미국이 얻은 외교적 성과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이념’의 틀로 세계를 둘로 갈랐다면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방침은 미국과 한배를 탄 동맹들을 양분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6일 중국 신장 지역에서의 인권탄압을 이유로 베이징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선수단은 보내되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 뒤 영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뉴질랜드·일본 등이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영미권의 비밀정보 공유동맹인 ‘파이브 아이스’ 구성국과 일본만이 화답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미 의회 전문 매체 <더 힐>은 26일 외교적 보이콧이 “제한된 성공이 될 신호가 보인다”고 짚었다. 특히 지난 9월 오커스(AUKUS) 출범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천문학적 액수의 잠수함 수출 기회를 놓친 프랑스는 “인권에 대한 우려를 부각하기 위해서 스포츠 경쟁을 활용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보이콧 불참을 선언했고, 한국도 13일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문재인 대통령)는 뜻을 밝혔다.
백악관은 동맹들의 엇갈리는 선택에 대해 “결정은 각자의 특권”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한국 입장에선 이웃 일본이 적극 동참 의사를 밝힌 뒤여서 적잖은 외교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민주당)은 지난 15일 의회 발언에서 프랑스를 향해 “오랫동안 인권을 옹호해왔으니 보이콧에 동참하라”고 말했고, 리처드 블루먼솔 상원의원(민주당)도 <더 힐>에 “중국이 올림픽을 거대한 선전전 승리로 활용하는 것을 막는 데 있어서 동맹들이 우리보다 덜 단호한 것 같아 매우 걱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국 동맹들의 단합 부족은 결국 중국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매우 미국 중심적인 분석도 있다. 미시간대 국제연구소의 메리 갤러거 소장은 “(외교적 보이콧은) 어디에 이견이 있고 누가 미국 편에 서려고 하지 않는지를 중국에 강조해준다”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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