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환경단체 지구의 벗 활동가들이 2021년 1월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 앞에서 셸의 나이지리아 오고니족 땅 기름 유출 문제에 항의하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 고등법원이 12월27일(현지시각) 석유회사 셸의 지진탐사를 중단시키는 판결을 내렸다. 셸은 동부 이스턴케이프주 앞바다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를 알아보기 위해 탐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현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해양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며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앞서 고등법원의 또 다른 재판에서는 법원이 셸의 편을 들었지만 두번째 재판에서는 법원이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최종 판결까지 법적 절차들이 남아 있다.
셸의 가스탐사 금지 소송 1승1패
탄성파탐사, 해양동물 피해 극심
어민 생계위협과 공동체 파괴도
바다·원주민 삶 지킬 해법 찾을까
문제가 된 것은 폭발물이나 수중 공기총 등으로 강력한 파동을 일으켜서 바닷속 지도를 만드는 기술인 ‘지진탐사’다. 매질에 따라 파동이 전파되는 속도와 각도가 달라지는 성질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일종의 지진파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되돌아오는 양상을 컴퓨터로 분석하면 해저 지층에 뭐가 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11월 초에 셸이 밝힌 계획에 따르면
6000㎢ 넓이의 해역을 2022년 봄까지 다섯달 동안 조사할 예정이었다.
서울 면적 10배에 이르는 바다에 하루 종일 10초 간격으로 충격파를 발사하면 해양 동물들은 어떨까. 파동은 곧 소음이다. 고래나 돌고래 같은 해양포유류들은 음파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높은 소음에 오래 노출되면 청력을 잃을 수 있다. 낮은 수준의 소음도 일시적으로 청각에 혼란을 부를 수 있다. 선박에서 나오는 음파 때문에 철 따라 이동하는 혹등고래 무리에서 개체들이 더 띄엄띄엄 움직이는 등 행동이 달라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흰긴수염고래가 지진파를 피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거나, 회색고래의 호흡이 빨라지는 증상 등이 보고되기도 했다. 바다거북, 어류와 오징어류도 지진파가 일어나면 도피 행동을 보인다. 한마디로 생태와 서식지가 교란된다.
에너지업계는 지진탐사에서 나오는 음파가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남아공뿐 아니라 곳곳에서 이런 탐사를 둘러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킴벌리에서 260㎞ 떨어진 롤리숄스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보존 잘된 환초들이 있는 지역이다. 생물다양성 핫스폿으로 고래와 돌고래 25종, 바다거북 6종 등 96종의 보호 대상 해양종이 산다. 그런데 보호구역 바로 경계선 밖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탐사회사가 지진탐사를 하겠다고 해서 해양전문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미국 시장전문매체 <마켓워치> 보도를 보면
2022년 세계 지진탐사 시장은 93억달러, 약 11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탐사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탐사구역은 8600㎢로 이스턴케이프보다 더 넓다. 2018년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가 중국 비지피(BGP)와 체결한 초대형 탐사 계약은 조사 면적이 무려 8만5000㎢에 이른다.
남아공의 탐사계획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아공 광물에너지자원부가 민간 탐사회사인 임팩트 아프리카에 탐사권을 줬는데, 셸이 2020년 이 회사 지분 절반을 사들였다. 그런데 그사이 환경법이 바뀌어서, 탐사권을 갱신하려면 환경허가를 제출해야 한다. 지역 단체들은 셸이 환경허가를 안 냈다며 제소했다.
셸은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축적하고 있다며 2013년 자체적으로 만든 환경관리 프로그램을 법원에 근거로 제시했다. 남아공 정부는 “검토 결과, 셸이 환경 영향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편들었지만, 환경전문가들은 현재의 과학 연구들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시대적인 프로그램이라 비판한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에 관여했던 해양학자도 당시 보고서가 기업의 이익에 맞춰 만들어졌다며 환경단체들 편에 섰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해양생태계의 한 축인 플랑크톤 문제를 빠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셸이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 해역에서 2012년 지진탐사를 했는데, 그 뒤 참치 어획량이 급감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진탐사가 현지 어민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스턴케이프는 남아공에서도 가장 개발이 덜 된 지역이며 주민 대부분은 코사어를 쓰는 음폰도, 템부, 찰레카, 라하베 등 토착민 부족들이다. 탐사 반대 운동에 앞장선 것도 그들이었다.
환경과 결부된 토착민 공동체 파괴에서 셸은 어떤 기업보다도 악명 높다. ‘오고니 9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나이지리아 유전지대인 니제르델타에서 원주민 오고니족 땅에 기름을 유출해 엄청난 환경파괴를 일으켰다. 1995년 나이지리아의 당시 군사독재정권은 셸의 채굴에 저항한 원주민 활동가 9명을 붙잡아 처형해버렸다. 이들을 체포하도록 셸이 정부군에 헬기를 제공한 사실이 나중에 폭로됐다. 원주민 활동가들의 처형은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셸을 상대로 한 소송이 여러 나라에서 제기됐다. 일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번 남아공 재판에서 원주민 활동가들은 토착민들의 삶이 지역 환경과 문화적,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다.
정부 입장은 정반대다. 그웨데 만타셰 광물에너지자원부 장관은 법원 판결 뒤 “개발을 막는 것은 환경보호로 위장한 아파르트헤이트와 식민주의”라고 말했다. 남아공이 발전할 기회를 빼앗는 짓이라는 것이다. 영국-네덜란드계 기업인 셸을 옹호하면서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의 피해자인 원주민들을 정부가 공격한 꼴이다.
남아공의 에너지 사정이 나쁜 것은 사실이다. 석유가 있기는 한데 2017년 기준으로 매장량 추정치는 1500만배럴에 그쳤다. 천연가스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세계 22위 석유수입국이고 천연가스도 수입한다. 전력의 85%를 화석연료를 태워 생산하는데 인프라 문제 등으로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남아공은 석탄 의존도가 높고, 세계에서 13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정부는 석유와 가스 분야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남아공은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2021년 11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고용을 늘리고 생계에 도움이 될 저탄소 사회, 환경 회복력이 있는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유럽 등으로부터 탈탄소 지원금으로 5년간 85억달러를 받기로 했다. 원주민 공동체와 환경단체들은 기후대응을 약속한 정부의 대외적인 태도와 화석연료산업을 지원하는 행태가 배치된다고 지적한다. 원주민들은 바다를 지킬 수 있을까. 고래들은 조용히 쉴 수 있을까.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