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중국 티베트에서 포착된 눈표범의 모습. 신화 연합뉴스
늑대가 돌아왔다. 표범과 호랑이가 세력권을 다툰다. 사정이 급해진 건 눈표범이다. 네팔의 험준한 산악과 설원이 전에 없던 맹수들의 싸움터가 됐다.
눈표범은 눈 덮인 바위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나면 목을 노리고 달려든다. 야행성으로 혼자 다니는데다 흰 털에 박힌 특유의 무늬가 보호색 역할을 해줘 여간해선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눈표범을 히말라야 사람들은 ‘산의 유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몇년 전만 해도 눈표범은 이 지역의 유일한 맹수였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자 저지대에 살던 호랑이와 표범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추운 기후를 보호막 삼아 지내던 눈표범에게, 이들의 출현은 엄청난 위협이다.
설상가상으로 늑대까지 나타났다. 히말라야늑대는 네팔에서 40년 넘게 사실상 사라진 상태였는데 몇년 전부터 돌아와 야크나 산양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동물 연구자 비크람 슈레스타는 생태전문지 ‘몽가베이’에 “속도와 지구력이 뛰어나고 아주 먼 거리까지 이동할 수 있으며, 협동심과 사회성을 발휘해 세계에서 가장 큰 소 종류의 하나인 거대한 야크를 쓰러뜨리는 것이 이 늑대들”이라고 했다.
네팔에서 늑대가 사라진 것은 가축을 잡아먹는 것에 성난 목동들이 사냥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티베트 일대에 살던 히말라야늑대들이, 야크의 이동을 따라 조금씩 네팔로 넘어온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측한다. 환경단체 ‘서드 폴’의 라메시 부샬은 2014년 네팔 당국이 품종 개량을 위해 중국에서 야크를 들여온 것과 늑대들의 이동이 때를 같이했다고 적었다. 당시 야크 30마리가 티베트에서 칸첸중가산(에베레스트) 북서쪽 낭파라를 지나 네팔에 들어왔다가 다시 같은 경로로 되돌아갔는데, 그 후 늑대가 목동들을 공격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과 보호단체들이 걱정하는 것은 야크나 산양이 아니라 눈표범이다. 해발 2000~6000m에서 살아가는 눈표범은 고독을 타고난 동물이다. 네팔의 셰이폭순도 국립공원에서 눈표범 다섯마리에게 추적장치를 달아 관찰해보니 12~39㎢ 넓이에서 활동하며 하룻밤에 최대 7㎞를 이동하는데, 한 지역에 살면서도 자기들끼리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100㎢ 넓이에 최대 열마리, 먹이가 드문 곳에서는 1000㎢ 안에 겨우 다섯마리 정도만 살아갈 수 있다.
야생에서 15~18년을 사는데 발정기가 짧고 수컷은 짝짓기 후 다른 짝을 찾지 않는다. 암컷은 석달가량의 임신 기간을 거쳐 두세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새끼들은 2년이 지나지 않아 독립한다. 히말라야와 티베트고원, 시베리아 남부, 몽골과 중국 서부의 사막, 산악지대가 주요 서식지이지만 이제는 세계에 1만마리도 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 약재로 쓰이는 힘줄과 뼈, 털가죽을 노린 인간들 탓이 컸다. 그래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위기종 목록인 ‘레드 리스트’에 ‘취약종’(VU)으로 분류돼 있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서도 눈표범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인도는 1972년부터 야생동물보호법에서 ‘최고 수준의 보호’를 규정했지만 이미 1990년대 초반 인도 내 25개 보호구역의 눈표범 개체 수는 200~600마리밖에 안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키르기스스탄과 네팔은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은 1980년대에 보호동물로 지정했고 밀렵이나 밀거래를 무겁게 처벌한다. 2013년에는 키르기스스탄에서 12개국 대표들이 ‘글로벌 눈표범 포럼’을 열고 공동 보호를 약속했다.
하지만 험산 준령조차 이제는 눈표범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지난해 10월 네팔 당국은 2009년 121마리였던 호랑이 개체 수가 보호 조치 덕에 10여년 만에 355마리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호랑이가 늘면서 코끼리나 코뿔소와 충돌이 증가했다. 벵골호랑이들은 원래 강어귀 습지나 산기슭에 살았는데 몇년 사이 고산지대로도 옮겨 가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이동이 확인된 것은 2020년이다. 네팔 서쪽 끝 다델두라의 승려에게서 “호랑이 소리가 난다”는 얘기를 들은 삼림보호관이 세계자연기금(WWF)과 협력해 그해 봄 카메라 62대를 설치했다. 반신반의했는데 해발 2511m에 설치된 카메라에 호랑이 한마리가 잡혔다. 이내 3165m 지점에서 또 다른 호랑이가 포착되면서 이 기록은 금세 깨졌다. 이 소식은 네팔뿐 아니라 세계로 퍼져나갔다. 낮은 땅 범람지대에 사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벵골호랑이가 시원한 기후를 찾아 산으로 올라갔을 것으로 추측됐다.
60여일 동안 카메라에 찍힌 10만장 가까운 사진을 분석한 세계자연기금 소속 연구자 칸찬 타파는 연구자료 사이트 와일리에 올린 보고서에서 “마릿수가 늘어난 호랑이들의 서식지가 새로운 지역으로 분산되고 있다”며 “기후변화 영향 때문에 호랑이들이 ‘기후 피난처’를 찾아 고산지대로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표범들도 같은 이유로 히말라야로 향하고 있는데, 부탄에서는 5400m 지점까지 올라간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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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눈표범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나 고양이과 맹수들은 서식지가 겹치면 약한 종이 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눈표범이 피신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인도나 부탄 등 주변국들의 사례 등과 비교하고 네팔 내에서 촬영된 사진들을 분석했을 때, 해발 3000m 안팎의 지대에서 호랑이와 표범과 눈표범의 활동 반경이 겹칠 수 있다.
거기에 늑대까지 가세했다. 카트만두 트리부반 대학의 동물학자 카말 타파는 현지인들이 ‘나우르’라고 흔히 부르는 티베트푸른양의 경계 행동이 늑대의 귀환 이후 달라진 양상을 조사해 지난달 ‘와일드라이프 리서치’ 회보에 실었다. 연구 결과 오랫동안 눈표범의 사냥 전략에 적응해온 나우르들이 새 포식자 무리가 나타나자 대처법을 몰라 당황해하며 경계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나우르 같은 초식동물은 맹수를 경계하다 보면 먹는 데 쓰는 에너지가 줄어 영양 결핍에 빠질 수 있다. 눈표범은 먹이를 놓고 늑대나 표범과 직접 경쟁해야 할 뿐 아니라, 나우르의 건강과 번식 패턴이 달라져 결국 먹이 전체가 줄어들 수 있다.
눈표범의 처지는 딱하지만 호랑이와 표범에게, 늑대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생태환경이 달라진 맹수들의 공격이 늘자 산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반감마저 일고 있다. “노르웨이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늑대 8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지만, 사람과 가축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보호구역 안에서조차 정부의 버림을 받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자국 땅에 있는 80마리의 늑대조차 원하지 않는데, 300마리가 넘는 호랑이 보호 비용을 네팔과 네팔 국민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이 공정할까.” 지난해 네팔 정부가 ‘호랑이 증가’라는 성과를 발표했을 때 네팔과 영국 과학자들은 알자지라 웹사이트 기고에 이렇게 적었다.
눈표범과 맹수들, 히말라야 생태계와 인간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