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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민주주의 짓밟힌 미국, 균열의 골 더욱 깊게 패였다

등록 2022-01-04 04:59수정 2022-01-04 07:52

1·6 미 의사당 난입 1년
미 ‘민주주의 추락’ 극명하게 노출
“1·6 사태, 일상적 쿠데타의 서막”
민주 지지자 85% “정부 전복 기도”
공화 지지 71% “바이든 인정 못해”
지난해 1월6일 오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안으로 난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성조기와 “트럼프가 대통령”이라고 써진 깃발을 들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지난해 1월6일 오후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안으로 난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가 성조기와 “트럼프가 대통령”이라고 써진 깃발을 들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비극입니다.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럽고, 미국적이지 못한 일이죠.”

일요일인 2일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사당 앞에서 만난 토머스(65)는 1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딱 잘라 말했다.

텍사스주에 살면서 워싱턴을 이날 처음 방문했다는 그는 ‘1년 전 그날’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사태를 보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 평생에 그런 일은 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그의 아내 로리(71)도 “남북전쟁을 제외하고 미국 민주주의 역사상 최악의 사태였다. 아니, 그날 벌어진 일이 실제로 내전 같았다. 미국이 지금도 내전 상태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의사당 난입사태 1주년을 며칠 앞두고 현장에서 만난 미국 시민들은 말을 거는 기자에게 “아, 1월6일…” 하며 잠시 숙연해졌다. ‘1월6일’은 미국인들에게 7월4일(독립기념일)처럼 고유한 역사적 날짜가 돼버렸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32살 남성은 “집에서 일하다가 ‘티브이 보라’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 티브이를 켰다. 끔찍했다. 그런 일을 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대로 미국은 1년 전보다 통합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침묵하더니 “통합은 불가능한 임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인증을 저지하기 위해 연방의사당의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가 점거한 난입사태가 벌어진 지 1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났지만, 미국은 1·6 사태의 충격과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020년 11월3일 치러진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는 ‘대선 사기’를 주장하며 결과를 뒤집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는 바이든 당선 최종 인증을 위한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는 지난해 1월6일, 백악관 앞에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의사당으로 걸어갈 것이다…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더 이상 나라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은 의사당 경호망을 뚫고 건물 안으로 몰려들었다. 비밀경호국과 연방수사국(FBI)의 추산으로 약 1200명이 의사당 내부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1명과 민간인 4명 등 5명이 목숨을 잃었고, 140여명의 경찰관이 다쳤다. 트럼프는 이 사태를 선동한 혐의로 일주일 뒤인 1월13일 하원에서 재임 중 두번째로 탄핵소추당한 채 1월20일 임기를 채우고 퇴임했다. 탄핵소추안은 2월 상원에서 공화당의 반대로 최종 부결됐다.

1·6 사태는 트럼프의 ‘대선 사기’ 주장과, 재검표 소송·협박 등 집요한 뒤집기 시도, 그리고 이에 동조한 수많은 지지자들의 극단적 행동이 결합돼 터진 사건이다. 미국에서도 미국의 깊은 분열과 민주주의가 추락한 현실이 이 사건에 집약돼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니스캐넌센터의 정치연구 부문 책임자인 제프리 카바서비스는 지난달 <폴리티코>에 실은 글에서 “2021년은 너무 많은 미국인들이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당연한 걸로 여겼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결국, 그게 1·6 난장판 사태보다도 훨씬 더 큰 위험이라는 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같은 매체에서 데이비드 블라이트 예일대 역사학 교수는 1·6 사태와 미국 연방대법원의 보수화 등을 거론하면서 “2021년은 21세기 민주주의 실험의 종말론적인 결별 순간일 뿐 아니라, 헌법적 공화국에 대한 일상적 쿠데타의 서막이었다”고 진단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진상규명·민심통합 험란
하원 특위, 중간선거 선 보고서
이방카도 당시 ‘폭력 중단’ 촉구
백악관 기록 공개 등 지지부진
바이든·트럼프, 6일 각각 회견

이 일은 미국 국내를 혼란으로 몰고 간 데 그치지 않고 전세계에 민주주의를 주창해온 미국의 국제적 위상도 실추시켰다. 미국이 “독재”라고 손가락질하는 중국의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은 지난해 10대 국제뉴스의 첫번째로 1·6 사태를 꼽았다.

미 언론은 1·6 사태 이후 깊어진 미국의 분열과 불신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시비에스>(CBS)가 지난달 27~30일 조사해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8%가 1·6 사태를 ‘증가하는 정치적 폭력의 신호’라고 대답했다. 갈수록 정치적 폭력이 빈발할 것으로 관측한다는 얘기다. <워싱턴 포스트>와 메릴랜드대학교의 조사(지난달 17~19일)에서는 ‘정부에 대한 폭력적 행동이 때때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응답이 34%로, 2011년(16%), 2015년(23%)보다 늘어났다. 정부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1·6 사태의 성격에 대해서도 극명한 시각차가 드러났다. <시비에스>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85%는 이 사태를 ‘반역’, ‘정부 전복 시도’라고 응답한 반면, 공화당 지지층은 ‘애국심’(47%), ‘자유 수호’(56%)라고 선택했다. 이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66%가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학교와 데이터 분석기업 유고브가 지난달 14~20일 벌인 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의 71%가 바이든을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재도전 야심은 이 같은 분열 위에서 타오르고 있다.

미국은 1·6 사태의 전체적 그림을 파악하고 이 사태가 낳은 상처를 극복하려 진통을 겪고 있다. 관심은 지난해 7월1일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 주도로 만들어진 ‘1·6 미 의사당 공격 조사 특별위원회’(위원장 베니 톰슨 민주당 의원)에 모아진다. 당시 트럼프 지지자 집회의 배후와 자금 흐름, 온라인상 극단주의자들의 활동, 정부 기관들의 대비 태세 등을 포함해 그날의 진상을 밝혀내는 게 특위의 임무다.

특위는 현재까지 300명 이상의 증인을 면접하고, 3만5000쪽 이상의 기록을 확보했으며, 50건 이상의 소환장을 발급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와 측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굵직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핵심인 1·6 사태 당시 트럼프의 역할과 관련해 특위는 1·6 사태 앞뒤로 백악관에서 생산된 자료들을 국가기록관리청(NARA)에 요청했다. 백악관의 통화기록, 방문자 기록, 마크 메도스 전 비서실장의 수기 메모 등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들 문서는 공개 요구로부터 보호받는 ‘행정 특권’ 적용 대상이라며 대법원에 특위의 문서 입수를 막아달라고 신청했다.

특위는 지난달 13일, 마크 메도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의 문자메시지 기록을 통해, 사태 당시 트럼프 장남과 <폭스 뉴스> 앵커 등이 ‘트럼프가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고 메도스에게 촉구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특위 부위원장인 리즈 체니 의원(공화당)은 2일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도 당시 최소 2차례 이상 트럼프에게 “‘폭력을 멈춰달라’고 촉구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방송 인터뷰에서 추가 공개했다. 트럼프는 사태 당일 의사당이 폭도에 뚫린 지 한 시간 만에 트위터로 “폭력 금지”를 호소했고, 또 한 시간 뒤에 동영상을 올려 “선거를 도둑맞았지만, 평화롭게 집으로 가라”고 촉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지난해 1월6일 오후 워싱턴 국회의사당 안으로 난입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지난해 1월6일 오후 워싱턴 국회의사당 안으로 난입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의 ‘킹메이커’로 꼽히는 로저 스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빌 스테피언 전 공화당 전략가, 제이슨 밀러 전 백악관 선임고문,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핵심 측근들도 특위 소환을 거부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특위는 올해 여름 예비 보고서를 내고,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최종 보고서를 내놓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 사태 1주년을 맞는 6일 각각 워싱턴과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연설한다. 미국의 극심한 분열을 전세계가 재확인하는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1·6 사태는 미국과 전세계에 과제를 던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달 말 공개한 글에서 분노와 절망 속에 ‘스트롱맨’을 갈망해온 미국의 한 부분을 트럼프가 채운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런 현상은 “미국 외에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그 빈틈을 네오파시즘이 아니라 희망으로 채우는 게 1·6 사태의 진정한 의미”라고 말했다. 케빈 와그너 플로리다애틀랜틱대학교 정치학 교수도 <한겨레>에 “1·6 사태를 바라보는 당파적 이견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이 사건이 미국 민주주의와 정치 시스템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갖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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