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등록 베트남 이주민을 막기 위해 장벽을 쳤다. 베트남 접경인 중국 남부 광시좡족자치구에서 물류 차량들이 국경을 넘으려고 대기하는 모습.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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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베트남 랑선성의 주민들이 중국 접경지역인 마을 뒷산에 올라 철조망을 뜯어내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퍼졌다. 주민 수백명은 중국 정부가 세워놓은 고압전류 장벽과 시멘트 말뚝을 뜯어냈고, 경찰은 이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한 중국인 관료가 나타나 소리쳤다. “당신들의 행위는 불법입니다! 양국의 협정에 따라 세워놓은 거라고!”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제로(0) 코로나 정책 기조를 지켜온 중국 정부는 지난해 가을 광시좡족자치구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국경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시행했다. 대응책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도널드 트럼프처럼 이주민 유입을 막는 장벽을 세우기로 했다. 검문소마다 400마리의 개와 500마리의 거위를 배치한 건 덤이다. 둘째, 역사상 처음으로 제조업 노동자를 위한 비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셋째,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교류와 노동이주 일상인데
코로나 이유로 더 높아진 국경
지난해 11월 말 광시성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늘자 중국의 베트남 국경검문소 세군데 중 한곳은 폐쇄됐고, 다른 두곳은 통행이 일부만 허용됐다. 중국 세관당국이 통관을 강화함에 따라 수천대의 트럭이 장시간 검문소 앞에서 대기해야 했고, 베트남 농민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베트남 농업개발부에 따르면 1월13일 4천여대의 화물차가 검문소에 발이 묶였다. 많을 땐 6200대에 달했다. 통관에만 열흘 넘게 소요되니 컨테이너 안에서 과일은 썩어갈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산업통상부는 “국경 통제는 과도한 방역 정책”이라며 “백신 접종을 완료한 베트남인들에게 국경을 개방하고 화물차 정체를 고려해 통관 기간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결국 1월25일, 중국 정부는 통관 제재 한달여 만에 교역을 재개했다.
오늘날의 베트남-중국 경계는 겨우 120여년 전에 그어졌다. 19세기 말 청나라와 프랑스 식민정부 간 조약에 따라 국경선이 획정되는 과정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목소리는 누락됐다. 중·베트남 양국의 합의는 2008년 12월31일에야 이뤄졌지만,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국경은 무의미한 선에 불과하다. 1년의 반은 중국, 나머지 반은 베트남에서 보내는 이들은 절약과 편리를 위해 숲과 밭을 거쳐 국경을 넘고, 온종일 노상을 하거나 친척과 친구를 만난다. 평생 이런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국경 장벽은 삶의 차단인 셈이다.
코로나보다 더 큰 요인은 따로 있다. 2010년 전후 베트남과 미얀마로부터 이주가 점점 증가하면서 장벽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중국 이민관리국 데이터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광시자치구의 미등록 베트남 국적자는 매년 약 20%씩 증가했다. 2017년의 경우 강제추방된 미등록 베트남인은 1만7천여명으로, 그해 적발된 전체 외국인 2만2139명의 약 77%다. 이런 추세는 최근까지 이어져 2021년엔 상반기에만 8만5천명을 기록했다. 코로나 이후 미등록 이주는 급증하는 모양새다.
산세가 험준한 육지 국경을 원천 봉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281㎞에 이르는 국경선에는 수백개의 길이 있다. 베트남에서 도보 몇분이면 중국에 진입할 수 있고, 암시장에서 차표를 사면 베이징까지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일찍이 2010년 봄 경제전문지 <경제참고보>는 접경지역의 밀입국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당시 충쭤시 국경수비대의 한 참모장은 인터뷰에서 “광시-베트남 접경의 특수한 역사와 지리 환경 때문에 공안이나 군은 국경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고 토로한 바 있다.
광시자치구의 인력난은 노동력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기인한다. 중국 경제활동인구는 2016년 정점을 찍었고 4년 사이 1700만명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가 2017년 ‘중-베트남 과경노무합작 시범사업’을 발표하면서 베트남 노동자의 합법 구직이 가능해졌고, 체류 기간도 30일에서 180일로 늘었다. 미등록 노동자의 불법 구직을 차단하고,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노동이주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2017년 접경도시인 핑샹시에는 베트남인 10만명이 유입됐는데, 이는 핑샹시 인구와 맞먹는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가구·전자제품·식품가공 등 일부 제조업에 한정되어 있고, 비자 갱신을 위해 자주 귀국해야 한다. 중국 정부가 베트남인의 중국 내 이동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최근 노동력 수급이 크게 부족해진 광둥성의 한 공장에선 수십명의 베트남 노동자가 미등록 상태로 일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양국 간 노동이주가 늘어난 더 근본적인 요인은 경제에 있다. 중국 제조업 임금은 여전히 베트남에 비해 2배 이상 높으며, 베트남 노동인구의 밀도는 산업 현실에 비해 높은 편이라 구직이 어렵다. 베트남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30살만 넘어도 좋은 일자리 찾기가 매우 어렵다.
평범한 이들이 국경 두고 분열
배 불리는 쪽은 초국적 자본뿐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히면 1970년대 이래 이주노동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증가 추세는 꾸준하다. 대부분 저숙련 혹은 여성으로 구성되는데, 대체로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높은 국가로 이동한다. 그 배경에는 자본에 의한 착취의 세계화가 있다. 상품·자본·기술 거래가 자유화되고 노동시장이 통합되면서, 국경을 가로지르는 이주노동도 크게 늘었다. 자본은 저임금을 찾아 공장을 옮기고, 노동자는 ‘바닥을 향한 경주’로 내몰린다. 중국·베트남·필리핀 노동자들이 한국과 일본, 대만에서 일하고 있고, 또 동남아시아의 한국과 일본 공장에선 현지 노동자들이 일한다. 최근 한국·대만·일본 등 수용국에선 일관되게 이주민 인권 탄압이 부각되고 있다. 일터를 바꿀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미등록 이주자에 대해 가혹한 탄압 등이 특히 논란이다. 1월16일 대만에선 40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미등록 이주자를 무기한 구금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출입국관리법의 개정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다.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국경을 사이로 분열한 채, 이해와 소통이 부재한다는 현실에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각국 사람들은 더욱 심한 착취의 굴레를 향해 경쟁하고 적대할 뿐, 자본의 억압에 맞서 단결할 수 없다. 그 사이 배를 불리는 것은 오직 하나, 초국적 자본과 그것을 소유한 극소수의 재벌들뿐이다. 이동의 자유와 보편적 노동권을 확대하는 것은 오늘날 민주주의나 불평등 해소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랑선성 주민들 앞에 세워진 고압전류 장벽은 우리를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한 셈이다.
홍명교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