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열린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디니거얼 이라무장(21·왼쪽)과 자오쟈원(21)이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 베이징/타스 연합뉴스
중국이 베이징 겨울올림픽의 성화 점화 주자로 신장위구르 자치구 출신 선수를 내세운 데 대한 후폭풍이 그치지 않고 있다. 위그르족 인권 침해 논란으로 서방 국가들과 극심한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러 신장 지역 선수를 선택해 올림픽의 의의를 흐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4일 올림픽 개막식의 성화 점화 주자는 위구르족으로 신장 알타이 출신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디니거얼 이라무장(21)과 한족으로 산시성 타이 위안 출신 스키점프 선수인 자오쟈원(21)이었다.
특히 위구르족으로 무명에 가까운 디니거얼이 최종 성화 주자로 나서자 중국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디니거얼은 개막식 다음 날 치러진 크로스컨트리 스키 경기에서 65명 중 43위에 그치는 등 실력도 월등한 편이 아니었다.
디니거얼의 고향 알타이는 1년에 6개월 이상 눈이 오는 곳으로, 1만년 전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스키 타는 모습의 벽화가 발견되는 등 스키의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디니거얼의 아버지 역시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출신으로, 디니거얼은 아버지의 지도를 받았다.
중국 내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미래를 향해’라는 올림픽 개막식 구호에 맞춰 높은 연령대에서 낮은 연령대로 성화가 전달됐는데, 20대이자 소수 민족인 디니거얼이 최종 점화 주자로 뽑힌 게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3000㎞ 떨어진 디니거얼의 고향 알타이에서는 그의 엄마가 “국가가 중요한 임무를 딸에게 맡겨 너무 감사하다. 딸은 잘해낼 것”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러나 미국, 영국 등 일부 서방 국가들은 최종 성화 주자 선정에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고 보고 있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신장 지역의 인권문제를 이유로 이번 대회를 외교적으로 ‘보이콧’했는데,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라는 것이다. 미 <엔비시>(NBC) 방송의 앵커 서배너 거스리는 “위구르족 선수를 선택한 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뜻”이라며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이 위구르족 집단 학살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맞대응이다. 매우 도발적”이라고 말했다.
해외에 있는 위구르족 단체는 “널리 알려진 운동선수가 아닌 디니거얼을 선택하고 그녀를 중국 다수인 한족 남자 선수와 함께 성화 주자로 결정한 것은 세계적 압력에 대한 시진핑의 저항 행위로 해석된다”며 “공격적”이라고 비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신장에 진주한 뒤 중국 전체 영토의 6분의 1에 달하는 지역이 중국 땅이 됐다. 중국은 이곳을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지정해 관리해 왔지만 분리 독립 투쟁이 지속됐다. 특히 2009년 위구르인들의 반한족 시위로 촉발된 민족 간 유혈 충돌 이후 중국 정부의 억압 강도가 세졌다.
유엔(UN) 등 국제기구는 전체 위구르인의 10%에 달하는 100만명의 위구르인이 강제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신장 지역에 위구르인 비율을 줄이기 위해 위구르 여성에 대해 강제 임신중지 정책 등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하며 신장 지역의 경제 발전 등을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