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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미-중 전쟁터가 된 ‘가난한 부자 왕’의 섬나라

등록 2022-04-23 19:20수정 2022-04-24 07:59

[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지구
솔로몬제도-중국 치안협력 협정 파장

정부 파산·폭동 줄잇던 솔로몬제도
당근 내놓은 중국과 안보협정 맺자
군사기지화 우려한 미국이 대응
패권 휘말린 섬나라는 어찌될까
지난해 11월26일 솔로몬제도의 수도 호니아라의 차이나타운. 반중국 정서가 강한 주민들이 부순 건물 잔해가 남아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해 11월26일 솔로몬제도의 수도 호니아라의 차이나타운. 반중국 정서가 강한 주민들이 부순 건물 잔해가 남아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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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섬에 발을 들인 유럽인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도 찾아낸 줄 알았던 모양이다. 파푸아뉴기니 부근에 있는 솔로몬제도. 9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남태평양의 이 나라는 어쩌다 어울리지도 않는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얻었을까. 1568년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 섬에 닿은 스페인 선원 알바로 데 멘다냐는 대단한 보물이 있을 줄 알고 기독교 성서 속의 ‘부자 왕’ 이름을 따서 솔로몬섬이라 명명을 했다고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배들의 방문이 이어지더니 19세기 말에 영국 땅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미국과 영국 군대가 솔로몬제도의 중심 섬인 과달카날에서 일본군과 전쟁을 벌였다. ‘과달카날 전투’에 대한 미국과 영국 쪽 기록에서 양쪽 2만명이 죽고, 항모 2척과 순양함 6척이 파괴됐다는 따위의 내용은 있지만 섬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빈곤은 폭력을 낳는다

섬은 1978년 독립국가가 됐으나 먹고살기는 녹록지 않다. 구매력 기준 1인당 연간 국내총생산이 2500달러에 불과하다. 인구 70만명 가운데 75%는 농업과 어업으로 먹고산다. 섬들의 면적을 모두 합하면 2만8400㎢이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4%가 안 되며 울창한 숲도 없고 이렇다 할 자원도 없다. 알바로 데 멘다냐는 착각을 해도 단단히 했던 것이다. 생선과 목재를 팔아 살아가는데 수출의 65%는 중국으로 간다. 제조업이 없으니 생필품과 소비재는 주로 수입한다. 수입 파트너는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한국, 싱가포르 순이다.

빈곤은 종종 폭력을 낳는다. 가난한 섬들에 살던 이들이 그나마 사정이 나은 과달카날로 몰려들면서 1990년대 말부터 부족 간 분쟁이 심해지더니 결국 폭력사태로 치달았다. 2001년 폭동이 일어났다. 정권이 무너지고 총리가 바뀌었으나 무장단체들은 점점 더 범죄조직처럼 변했고, 재무장관에게 총을 들이대고 수표에 서명하게 만드는 지경까지 갔다. 그 후폭풍 속에 2002년 정부는 빚을 못 갚아 파산을 했다. 빚을 쥐고 있던 중국이 부채를 통합해 재협상을 해줬다.

그 후 20년, 솔로몬제도의 역사에서 ‘중국’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2006년 총선에서 총리가 된 사람이 중국 사업가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의원들을 매수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수도 호니아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성난 주민들은 차이나타운을 때려부쉈고, 중국은 전세기를 보내 자국민들을 대피시켜야 했다. 반중국 정서가 크지만 그럼에도 중국에 기대야만 하는 처지이다 보니 정부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2000년대 들어 띄엄띄엄 네 번이나 총리를 하고 있는 머내시 소가바레는 2019년 대만과의 40년 가까운 관계를 끊고 중국과 수교했다. 지난해 11월 또 폭동이 일어났다. 경제적 불만은 이번에도 반중국 정서와 얽혀 표출됐다.

그러더니 올 들어 이 섬이 미-중 갈등의 또 다른 발화점으로 떠올랐다. 솔로몬제도가 중국과 2022년 3월 치안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안보협정까지 맺은 것이다. 협정에 따라 중국 군함이 앞으로 솔로몬제도에 정박할 수 있게 되며, 중국은 “사회 질서 유지를 돕기 위해” 경찰과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이 협정으로 중국이 솔로몬제도에 해군기지를 둘 수 있게 됐다며 경계한다. 심지어 이미 중국이 해군기지를 만들어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는 이 협정을 무산시키려 애써왔다. 지난해 폭동 이후 경찰력을 계속 솔로몬제도에 주둔시키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는 장관을 보내 안보협정을 재검토하라고 요청했다. 미국도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전화로 협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는데도 상황이 바뀌지 않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커트 캠벨 조정관과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이끄는 대표단을 보내기로 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에 보내는 사절단치고는 거물급 인사들로 구성된 셈이다. 미국은 1993년 닫았던 호니아라의 미국대사관도 다시 열기로 했다. 백악관은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중국과 솔로몬제도의 협정이 인도·태평양의 개방성과 안정에 위험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는 성명을 냈다. 반면 중국은 “우리의 협정은 제3자를 겨냥한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고, 중국 국영언론은 “미국이 솔로몬제도를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솔로몬제도 안에서도 중국과 손잡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는 않았다. ‘친중파’ 총리를 겨냥한 반대 진영의 공격이 거세게 벌어졌고, “총리가 중국 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되풀이됐다. 그러나 협정은 결국 체결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뒤 세계 전역에서 중국과의 대립선을 그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커스(AUKUS)니 쿼드(QUAD)니 하는 기구들을 가지고 아시아 동맹들을 단속하고 줄을 세웠다.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기보다는 ‘중국에 맞서 미국 편에 선 인도·태평양’을 구축하려 애썼다. 하지만 고달픈 솔로몬제도 사람들을 위해서는 미국이 뭘 해줬을까. 소가바레 총리는 최근 의회 연설에서 “기후변화로 태평양 섬나라들이 물에 잠길 적에 강대국들은 뭘 했느냐, 그저 이 지역을 ‘서구 열강의 뒷마당’으로만 보지 않았느냐”고 일갈했다.

속셈 훤한 강대국들의 원조

미국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개입’을 시도했다. 이 섬나라의 정정 불안과 갈등은 고질적이며, 특히 과달카날섬 사람들과 말레이타섬 사람들의 대립이 심하다. 소가바레 총리가 이끄는 중앙정부는 중국 편에 섰지만 말레이타 주정부는 대만과 다시 손잡고 싶어 한다. 2020년 10월 미국은 솔로몬제도의 섬들 가운데 말레이타를 콕 집어 2500만달러의 원조 계획을 발표했다. 그 전해에 이 섬이 받은 전체 외국 원조액의 50배에 이르는 규모였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가뜩이나 불안한 솔로몬제도를 둘로 쪼개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어진 지난해의 반정부 폭동은 미국의 이런 이간질과 무관치 않다.

중국도 할 말은 없다. 원조를 당근으로 내주는 것은 중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지만 거기에 중국은 직접적인 이권까지 끼워넣는다. 솔로몬제도가 중국과 수교하자마자 중국 회사가 땅 주인 동의도 없이 섬 하나를 통째로 75년간 빌려 쓰는 허가를 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패권 다툼, 땅 뺏기. 섬나라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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