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웨이펑허(오른쪽) 중국 국방부장(장관)과 로이드 오스틴(왼쪽) 미 국방장관이 회담하고 있다. 싱가포르/EPA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다 3년 만에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미·중 국방장관이 사흘 내내 대만을 놓고 ‘일전을 불사할 수도 있다’(不惜一戰)는 말까지 써가며 설전을 벌였다. 한·미·일 국방장관은 북핵 관련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점점 첨예화되는 가운데 10~12일 사흘 동안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이번 회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중 국방장관이 동시에 참가한 사실상 첫 회의라는 점에서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또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유럽이 아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열린 첫 주요 국방 관련 회의기도 했다.
이 회의를 통해 크게 두가지 중대한 정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미-중 갈등이 ‘전쟁’을 운운할 정도로 첨예해졌다는 점이다. 10일 미-중 국방장관 회담 이후 양국이 공개한 보도자료 등을 보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대만해협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삼갈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만약 누군가가 감히 대만을 분열(중국으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면 중국군은 반드시 일전을 불사하고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등 지도부가 그동안 대만 등 중국의 핵심적 국가이익을 건드리려는 미국 등에게 “불장난을 하다가 타 죽을 것”,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한 적은 있지만, 이제 양국 관계가 직접 전쟁을 언급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일전 불사’ 발언에 의미를 부여했다. <글로벌 타임스>는 11일 사설에서 “웨이 부장이 대만 문제에서 레드라인을 그었다. (이 발언이) 미국과 다른 관계 각 쪽이 위험한 오판을 하지 않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종섭 국방부장관(오른쪽)이 11일 오전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9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참석을 계기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가운데),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대신과 3국 국방장관 회의를 하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방부 제공
미-중의 설전은 11일, 12일에도 이어졌다. 오스틴 장관은 11일 연설에서 “우리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우리는 ‘하나의 중국’ 정책의 일부로서 대만관계법에 따른 우리의 약속을 계속 이행할 것이다. 이는 대만이 충분한 자위 능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무력 통일 시도를 막기 위해 대만에 꾸준히 무기를 파는 등 군사적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웨이 부장은 12일 기조연설에서 “미국은 통일을 위해 남북전쟁을 치렀다”며 “중국은 이런 내전을 원하지 않지만, 대만 독립의 어떠한 분열 책동이든 결연히 분쇄할 것”이라고 다시 위협 수위를 높였다.
두번째 의미 있는 변화는 5월 한국의 정권 교체에 따른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의 복원이었다. 한·미·일 3개국 국방장관은 11일 만나 국제 평화와 안정을 심각히 위협하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깊은 우려를 공유하고 3자 협력을 통해 이런 우려를 다뤄나가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한·미·일 미사일 경보훈련과 탄도미사일 탐지·추적훈련을 시행하는 등 한동안 중단돼 있던 3개국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권혁철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