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참석 중인 이종섭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1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가운데),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과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연합뉴스
박진 외교장관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한동안 중단됐던 한-일 간 군사협력을 재개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13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회담한 뒤 임한 기자회견에서 한-일 간 정보 공유를 되살리는데 미국이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한-일 관계의 개선과 함께 지소미아를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시키기 원한다.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사이에 정책 조율과 정보 공유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일 간의 “안보 협력과 정보 공유가 가능한 한 빨리 정상화되길 희망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 장관의 ‘지소미아 정상화’ 발언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관심을 끈다. 첫째는 그가 사용한 ‘정상화’(normalization)라는 용어 때문이다.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이 민감한 군사정보를 주고받을 때 서로 준수해야 하는 규정과 절차를 정한 것으로 그 자체가 정보 교환을 의무화하는 것은 아니다. 즉, 지소미아라는 고속도로가 뚫려 있어도 한-일 양국 정부는 원하지 않으면 차량 통행(정보 교류)을 멈출 수 있다.
한-일 갈등이 극에 달했던 2019년 8월 말 당시 청와대는 ‘지소미아를 석달 뒤 종료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2016년 11월 체결된 뒤 한-일이 직접 정보를 주고 받는 횟수는 29회였다고 밝혔다. 실제 지소미아를 통해 주고받은 정보가 많지 않으니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리진 않을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박 장관은 ‘정상화시키겠다’는 말을 통해 이 같은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인식을 밝힌 셈이다.
실제, 올 들어 북한이 잇따라 탄도미사일을 쏘아대는데도 한·일 군 당국은 ‘정확히 몇 발을 쐈는지’를 둘러싸고 거듭 어긋난 정보를 공개하는 등 양국이 긴밀히 정보를 주고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노출한 바 있다. 한 예로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5일 북한이 오전 9시8분께부터 약 35분여 동안 평양 순안 등 4개 지역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8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방위성은 같은 날 “최소 6발 발사했다”고 말하는데 그쳤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10일 오전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6발 이외에도 2발을 더 발사했다. 이 두발은 극히 낮은 고도에서 단시간 비상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정보 오류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문제가 거듭 노출되자 한-미-일 3개국 국방장관은 11일 아시아 안보회의를 계기로 싱가포르에서 만나 “한-미-일 미사일 경보훈련과 탄도 미사일 탐지·추적 훈련을 시행할 것”이라고 합의한 바 있다.
두번째는 박 장관이 그러면서도 ‘한-일 관계 개선과 함께’라는 유보를 둔 점이다. 한-일 간 군사협력은 한국 내에서 매우 휘발성을 갖는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어, 이를 본격 추진하려면 한-일 관계가 먼저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밝힌 것이다. 그 때문에 이번 아시아 안보회의 때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 한-중 국방장관 회담은 열렸지만, 한-일 국방장관 회담은 개최되지 않았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양국 간 중요 현안인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서 의미 있는 타협이 이뤄져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인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역사 문제에서 양보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한-일 간 군사협력에 나선다면 만만찮은 비판 여론에 내몰리게 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일본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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