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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교황, 캐나다 원주민 학살 사과했지만…“더 많은 책임 필요”

등록 2022-07-26 16:53수정 2022-07-27 02:33

원주민들 눈물 또는 침묵, 불참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 앨버타주 머스쿼치스 마을에 있는 원주민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한 학교에 방문한 가운데, 한 여성이 이 자리에서 캐나다 국가를 크리어(캐나다 중부에 사는 북미 원주민 크리족의 언어)로 부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 앨버타주 머스쿼치스 마을에 있는 원주민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한 학교에 방문한 가운데, 한 여성이 이 자리에서 캐나다 국가를 크리어(캐나다 중부에 사는 북미 원주민 크리족의 언어)로 부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50년 동안 사과를 기다렸고, 마침내 그 말을 들었다. 기쁘지만 한편으론 슬프고 무감각하다.”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자행된 아동 학살 사건의 생존자 에벌린 코크마즈는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교황은 이날 캐나다 중부 앨버타주 머스쿼치스 마을의 기숙학교 부지를 찾아 과거 이곳에서 행해진 원주민 강제 동화 정책에 가톨릭이 협조한 사실에 대해 사과했다. 교황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악행에 대해 겸허히 용서를 구한다”면서 인디언, 북극권에 사는 이누이트, 이들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서 태어난 ‘메티스’ 등 여러 원주민 공동체 대표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인 코크마즈는 <에이피>(AP) 통신 인터뷰에서 교황이 사과 이후 제대로 된 화해를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직접 듣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미묘한 반응을 보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황의 사과에도 일부 참석자는 침묵을 지켰고, 아예 참석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한 원주민 여성은 전통 복장을 입고 나타나 캐나다 국가를 원주민 언어 ‘크리어’로 바꿔 부르며 목청 높여 울었다. 행사에 참가한 원주민들은 기숙학교에서 숨지거나 집에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의 이름 4천개 이상이 새겨진 빨간 플래카드를 들고 운동장을 돌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캐나다 앨버타에 있는 머스쿼치스 마을에 방문해 캐나다 원주민, 메티스(캐나다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이누이트 등 원주민 공동체를 만나 과거 가톨릭에 의한 학살과 만행을 사과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캐나다 앨버타에 있는 머스쿼치스 마을에 방문해 캐나다 원주민, 메티스(캐나다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이누이트 등 원주민 공동체를 만나 과거 가톨릭에 의한 학살과 만행을 사과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교황은 이날 “원주민들을 기독교 사회로 강제 동화시킨 정책으로 그들의 문화가 파괴되고, 가족과 세대가 단절됐다”며 “기숙학교의 정책은 재앙적이었다”고 말했다. 또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가혹행위의 가해자를 특정하기 위해 교회 기록과 사제·수녀의 인사 파일에 접근하는 추가 조사를 요구했다.

기숙학교 피해자의 자녀로 여동생과 함께 온 샌디 하퍼는 통신에 “사과의 말을 듣는 것뿐 아니라 뭔가가 더 필요하다. 교회가 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학자들은 교황이 사과한 것이 가톨릭 선교사들의 만행에 대한 것일 뿐이며 15세기부터 이어진 유럽의 식민지 활동 전반에 가톨릭의 지원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원주민 자녀 15만명 이상은 19세기부터 1970년대까지 정부가 지원하는 가톨릭 학교에 다니도록 강요받았다. 원주민 자녀들을 고유 문화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적잖은 폭력, 인권 유린, 성적 학대가 벌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5월엔 캐나다 가톨릭 기숙학교 여러곳에서 학살된 아동의 주검 1200여구가 발견돼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캐나다의 139개 기숙학교 중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곳이 66개다.

앞서 캐나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2015년 보고서를 내어 이 정책이 “문화적 대량학살”에 해당한다고 결론 냈다. 약 9만명의 생존자와 정부·교회가 참여한 소송의 합의 결과,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 공동체에 수십억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교황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불거졌고, 교황은 지난 4월 바티칸에서 캐나다 원주민 대표와 만나 현지를 직접 방문해 사과하겠다고 약속했다. 교황의 현지 방문은 29일까지 이어진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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