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 가동을 중단한 뒤 내년 4월까지 예비 전력원으로 유지될 독일의 이자르2 원전 모습. 에셴바흐/로이터 연합뉴스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이 유럽연합(EU)이 가스와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에 포함시킨 것을 취소시키기 위한 법적 대응에 본격 나섰다.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이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화석 연료 억제 노력이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8일 환경단체 그린피스, 환경법 관련 단체 ‘클라이언트어스’와 세계자연기금 등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가스와 원자력을 ‘지속 가능 활동 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최근 포함시킨 것을 재검토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두 집단은 앞으로 16~22주 동안의 재검토 기간 중 유럽연합이 가스와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에서 배제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유럽연합의 대법원격인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정식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오스트리아와 룩셈부르크 정부도 원자력을 녹색 에너지에 포함시킨 데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그린피스는 가스와 원자력을 모두 문제 삼은 반면 클라이언트어스와 세계자연기금 등은 가스만 문제 삼고 있다. 클라이언트어스 등은 “가스는 유럽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화석연료이며 유럽 전역에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가스를 무기화하면서 유럽의 가스 요금이 폭등하고 이 여파로 전기 요금까지 급격하게 뛰고 있다.
그린피스의 유럽 지속가능 금융 캠페인 책임자인 아리아드나 로드리고는 “가스는 환경과 경제에 대혼란을 유발하는 핵심 에너지이며, 원전 폐기물의 방사능 위험성과 원전 사고 위험에 대응할 해결책이 없다는 점 또한 무시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낮추는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2020년 지속 가능한 투자 활동을 명확하게 분류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지난 2월2일 가스와 원자력을 이 범주에 새로 포함시켰고, 이 안은 논란 끝에 지난 7월6일 유럽의회를 통과함으로써 최종 확정됐다.
유럽연합은 가스와 원자력에 대한 투자가 녹색 투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스 발전 시설의 경우 2030년말까지 건설 허가를 받되, 킬로와트시(㎾h)당 온실가스를 270g 미만 배출하면서 기존 석탄 발전소를 대체해야 한다. 원자력의 경우는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받되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세부 계획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용 터미널을 20곳 새로 건설하기로 하는 등 올 겨울에만 적어도 500억유로(약 69조5600억원)를 화석연료 시설에 투자하기로 하면서 ‘녹색 택소노미’ 논란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