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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석유로 다진 ‘미-사우디’ 동맹, 석유로 미끄러지다

등록 2022-10-12 17:12수정 2022-10-13 02:40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 직접 원인이지만
기후 위기로 인한 새 에너지 질서가 근본 배경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왼쪽)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모습. AFP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왼쪽)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모습. AFP 연합뉴스

2차대전 이후 70여년간 국제 에너지 질서의 주축인 미국-사우디아라비아 동맹에 최대 균열이 일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가 주도한 오펙플러스의 지난 5일 석유 감산 결정에 대해 동맹 관계를 재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요동치는 세계 질서에 다시 한번 큰 충격이 예상된다.

이번 사태의 직접 배경은 2018년 10월 사우디 왕정에 비판적인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주튀르키예 사우디대사관에서 암살된 사건이다. 튀르키예와 미 정보기관들은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 사건의 배후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과정에서 사우디를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받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며 상황이 달라졌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지난 7월 사우디를 방문해 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미국은 석유 증산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얻지 못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오히려 바이든 대통령이 카슈끄지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대화를 공개한 것에 대해 격노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1일(현지시각) 빈 살만 왕세자가 이를 계기로 미국의 영향력에서 독립한 대외정책을 개척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졌다고 전했다. 측근에겐 ‘바이든 행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사우디는 애초 8월 오펙플러스 회의에서 하루 50만배럴 증산을 계획했지만, 빈 살만 왕세자의 지시로 10만배럴 증산으로 목표를 낮췄다. 에이머스 혹스틴 미국 국무부 에너지특사는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장관에게 약속을 어겼다고 항의했다. 격노한 압둘아지즈 빈 살만 장관도 독립적인 석유 정책을 펼치겠다는 결의를 강화했다. 이 충돌의 결과가 5일 나온 ‘하루 200만배럴 감산’ 결정이었다.

백악관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 감산을 철회시키려 백방으로 노력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이 감산을 ‘한달만 미뤄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전했다. 11월 예정된 중간선거에 영향을 최소화하려 한 것이다. 사우디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감산 결정이 나온 당일 “사우디가 러시아와 제휴하고 있다”며 극도의 실망감을 드러냈다.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45년 2월 2차대전 종전을 논의하기 위한 연합국 정상회의인 ‘얄타 회담’을 마친 뒤 사우디의 첫 국왕 이븐 사우드와 만나 일군 ‘에너지 동맹’에서 시작됐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에서 3일간 정상회담을 통해 사우디 왕정에 체제 유지와 안보를 보장하는 대신 전략 자원인 석유를 공급받기로 했다. 근본적 이슬람주의인 ‘와하비즘’에 바탕한 사우디 왕정의 중세 봉건적인 체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는 미국 대외정책에서 예외였다.

사우디는 이후 미국의 달러 패권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받아주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정착시켜줬고, 걸프 전쟁(1990년·2003년)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등에서도 미국에 적극 협력했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의 일극체제 구축에 한축을 담당했다.

사우디의 태도가 달라진 더 근본적인 이유는 셰일 혁명과 기후변화에 따른 재생에너지 개발로 ‘에너지 질서’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등 산유국의 전략적 중요성이 줄어들자 미국에선 중동 개입을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져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군을 단행했고, 이란 핵협정(JCPOA)을 복원하려 하며, 사우디 왕정의 인권 문제를 비판한다. 에너지 동맹의 핵심 전제는 석유와 안보의 교환이었는데 이 관계가 희석되고 있다. 그러자 사우디는 ‘석유 레버리지’를 지키려 러시아와 새 관계를 모색하려 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경고는 ‘그것까진 용납할 순 없다’는 의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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