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이탈리아 토리노의 한 서점에서 독자 한 명이 판매대에 전시된 해리 왕자의 회고록 <스페어>를 읽고 있다. EPA 연합뉴스
10일 출간된 영국 해리 왕자의 회고록 <스페어>가 영국 전역에 뜨거운 논란을 안겼다. ‘선정적 논란’이 한 차례 지난 뒤 이 책이 말하려 했던 영국 왕실의 오랜 문제점과 군주제에 대한 비판 등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6일 미국 <시엔엔>(CNN)은 해리 왕자의 왕실 경험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담긴 책 <스페어>가 출간된 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여러 폭로에 이목이 쏠렸지만, 이는 책 전체의 맥락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리 왕자가 책을 통해 말하려 한 것은 그가 형 윌리엄 왕세자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수년간 느낀 좌절감과 절망이며, 호화롭고 특권적이라 인식되는 왕실 경험에 대해 독자들을 눈 뜨게 한 것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 트랜스월드 펭귄랜덤하우스는 책 내용에 대해 ‘날조되거나 굽히지 않는 솔직함’을 약속했다. <시엔엔>은 책에 솔직함은 확실히 존재하고 그(예상) 이상이었다고 밝혔다.
<스페어>는 출간 이후 영국 40만부를 비롯해 미국·캐나다 등에서 143만부가 팔렸다. 410쪽 분량의 이 회고록은 출간과 동시에 세계 최대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의 단행본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스페어>는 왕가의 차남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장남에 대비한 ‘예비분’이란 뜻이다. 이 책을 출판한 트랜스월드 펭귄랜덤하우스 이사 래리 핀레이는 “우리는 이 책이 성공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의 낙관적 기대를 뛰어넘고 있다”면서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논픽션 책이 됐다”고 밝혔다.
이 책을 선호하는 이들은 영국 왕실에 회의감을 갖고 있는 젊은 야당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컨설팅회사 ‘사반타’가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3%는 해리 왕자가 책에서 밝힌 왕실 경험에 대한 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면, 응답자의 39%는 ‘신뢰한다’고 답했다. 사반타에 따르면,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18~34살 젊은 연령대 △지난 선거에서 야당 노동당에 투표한 집단 △군주제보다 선출을 통해 국가 대표를 뽑는 공화제 지지층 등에서 높게 나왔다.
역사학자 케이트 윌리엄스는 나아가 해리 왕자의 책이 군주제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는 <시엔엔>에 “비록 그가 군주제를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그는 군주제의 많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 비판한다”면서 “(군주제로 인해) 한 아이가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관심을 받고, 다음 아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해리 왕자는 지난 14일 영국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형인) 윌리엄 왕세자의 세 자녀 중 적어도 한 명은 나처럼 ‘스페어’가 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책임을 느낀다.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고 걱정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회고록을 출간한 것은 “군주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아니었다”면서 “이 책은 왕가를 그들 자신으로부터 구하려는 것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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