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지난해 10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린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클랜드/EPA 연합뉴스
오는 7월 개막하는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 사우디아라비아가 후원사로 참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개최국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사우디발 ‘스포츠워싱’ 논란의 연장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축구협회는 1일(현지시각) “
충격적이고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 문제에 대해 일절 상의하지 않았다. 공동으로 피파에 해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라고 밝혔다. 앞서 사우디 관광청이 ‘비지트 사우디’(Visit Saudi)라는 브랜드를 통해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과 함께 여자월드컵 스폰서로 참여한다는 보도가 나온 데 따른 반응이다.
이들 나라의 반발 배경에는 자국민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는 사우디가 대형 여성 스포츠 대회를 국가 이미지 세탁에 이용한다는 비판적 시선이 있다. 사우디에서 여성은 학교나 병원에 가는 데도
남성 후견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후견인법에 따라 남성은 ‘불복종’ 여성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여성권 운동을 벌인
인권운동가가 실형을 선고받고 투옥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을 관전 중인 사우디 여성들. AP 연합뉴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때도 카타르의 인권 실태에 목소리를 냈던 호주 축구계에서는 비판이 거세다. 전 남자축구 대표팀 주장 크레이그 포스터는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를 후원하거나 맥도날드가 비만 방지 심포지엄을 지원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며 “인권에 대한 원칙은 무시하면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돈이 우선인 피파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사우디의 행보가 오히려 인권 문제 개선을 촉진한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중동 전문가 데이비드 로버츠 교수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위시한 사우디 엘리트들은 빠르게 문화적 혁명을 완성하고 싶어 한다”라며 “이 과정에서 사우디 왕국의 여성들을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 해방하는, 누구도 생각 못했던 변화도 이루어진다”고 짚었다.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한 셰이크 살만 빈 이브라힘 알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왼쪽부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인판티노 피파 회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 EPA 연합뉴스
사우디는 2012년 처음으로
올림픽에 여성 선수를 출전시켰고, 2018년부터 축구장에서 여성 관중을 받기 시작했다. 사우디축구연맹(SAFF)은 2019년 여자축구부서를 신설하고 2020년에는
여자축구리그를 출범시켰다. 국제사회의 중역으로 도약하는 데 스포츠를 이용하는 사우디의 야심은 내부 사회의 제한된 변혁도 추진하지만, 인권 문제를 둘러싼 충돌은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1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2027 아시안컵 개최국으로 선정된 사우디는 2026년 열리는 초대 여자아시안컵 유치에도 신청서를 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