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청정 수소 기술 벤처기업을 방문해 장비를 살피고 있다. 베지에/EPA 연합뉴스
원자력 발전이 녹색 에너지인지를 놓고 충돌해온 프랑스와 독일이 ‘녹색 수소’ 규정을 놓고 또다시 마찰을 빚고 있다. ‘녹색 수소’ 논란은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로 만든 수소를 재생 수소로 볼 것인가를 둘러싼 것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3일(현지시각) ‘재생 가능 수소’를 규정하고 관련 투자와 정부 지원금 등을 규제하는 내용의 법 규정 2건을 마련해 앞으로 2개월 동안 유럽의회와 회원국의 검토를 거쳐 시행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규정의 핵심은 전력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이 1메가줄(줄은 1와트의 전력을 1초 동안 생산하는 힘)당 18g 이하인 지역에서는 수소 생산 업체들이 기존 전력망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다만, 수소 생산에 소비되는 전력만큼 재생에너지를 구입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할 때만 재생 수소로 인정받게 된다.
현재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유럽연합 회원국은 전력 생산에서 원전의 비중이 2021년 기준 69%에 달하는 프랑스와 원전과 수력발전으로 전력의 85%를 생산하는 스웨덴의 북부 지역뿐이다. 이 때문에 이 규정은 원전 비중이 높은 데다가 신규 원전 투자도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의 큰 승리로 평가된다. 유럽연합의 한 외교관은 “프랑스로서는 큰 승리이고 스웨덴으로서는 이보다 조금 덜한 승리”라며 “독일의 우려는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에너지부 당국자는 “이날 결정은 프랑스에 아주 중요한 것”이라며 “이는 재생 수소 목표를 산정하는 데 있어서 프랑스 전력 생산이 탄소 배출에서 자유롭다는 걸 인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은 강하게 반발했다. 연방 경제부 대변인은 “원전은 재생 에너지가 아니며 원전에서 생산된 수소 또한 녹색 수소가 아니다”며 “이런 방침이 (앞으로의)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라고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날 발표된 규정에는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의 성격에 대한 판단이 포함하지 않았으며 이 문제는 향후 협상을 통해 논의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이날 공개한 법안 해설용 ‘질문-답변’에서 이 규정의 바탕이 되는 ‘재생 에너지 지시(디렉티브)’는 원전을 재생 에너지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행위는 천연가스보다 온실 가스 배출량이 70% 이상 적은 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수소를 ‘저탄소 수소’로 따로 규정하는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독일이 또 다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유럽에서 수소 생산에 쓰이는 전력량은 무시할 정도로 적지만, 2030년까지 1천만t의 수소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500테라와트시(TWh)의 전기가 필요할 것으로 유럽연합 집행위는 추산했다.
한편, 환경 단체들은 이날 발표된 규정이 결국은 화석 연료 사용을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르웨이 환경 단체 ‘벨로나 재단’의 마르타 로비솔로 재생에너지 정책 자문은 “다른 부문에서 사용되던 전력을 끌어다 쓰는 걸 허용함에 따라, 전력이 부족해진 부문에서는 결국 가스 사용 확대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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