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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세계 최강용병 출신 산악인 두 다리 잃고 에베레스트 ‘의족 점령’

등록 2023-05-22 11:52수정 2023-05-22 16:59

아프간 전쟁 참전했던 구르카 용병의 도전
구르카 용병 출신 네팔 산악인 하리 부다 마가르(43)의 인스타그램 갈무리
구르카 용병 출신 네팔 산악인 하리 부다 마가르(43)의 인스타그램 갈무리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서 두 다리를 잃은 네팔 구르카 용병이 의족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장애인이 된 뒤 삶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의 목표는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각) 영국 <비비시>(BBC)는 구르카 용병 출신인 네팔 남성 하리 부다 마가르(43)가 두 다리에 의족을 착용한 채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6일 베이스캠프에서 등반을 시작한 마가르는 지난 19일 오후 3시께 등정에 성공했다. 2010년 아프간 전장에서 사제폭탄에 두 다리를 잃은 지 13년 만이었다. 

‘세계 최강의 용병’으로 불리는 구르카는 네팔의 몽골계 소수부족에서 이름을 따온 군인을 말한다. 영국은 1816년 네팔을 침공했다가 큰 피해를 입고 평화 협정을 맺었는데, 이후 네팔 구르카 부족 전사의 용맹함에 반해 이들을 용병으로 기용했다. 구르카 용병은 1·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전쟁에서 영국군에 배속돼 큰 활약을 펼쳤고 영국 육군은 지금도 구르카 용병 부대를 유지하고 있다.

1999년 영국군에 입대한 마가르는 2010년 아프간 전쟁터에서 급조폭발물(IED) 공격으로 두 다리를 잃었다. 군인 20명이 한 줄로 걸어가던 중 딱 10번째였던 마가르의 발밑에서 폭탄이 터졌다. “아프간에서 배웠죠. 왜 첫 번째부터 아홉 번째 사람까지 멀쩡하다가 내 차례에 터진 걸까요?” 그는 영국 <더 텔레그래프>에 “내가 죽을 운명이 아니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운명을 건 도전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3일 네팔 산악인 하리 부다 마가르(43)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EPA 연합뉴스
지난 4월3일 네팔 산악인 하리 부다 마가르(43)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EPA 연합뉴스

마가르의 에베레스트 등정은 ‘장애인 차별’이라는 큰 산을 넘는 것으로 시작됐다. 2017년 12월 네팔 정부가 사망 사고를 줄이겠다며 산악규정을 개정해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의 에베레스트 등반을 금지하기로 한 탓이다.

그는 장애인의 에베레스트 등정 금지령을 폐지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고, 실제로 2018년 네팔 대법원은 네팔 정부의 조처가 차별적이라는 청원을 받아들여 이 금지령을 취소했다.

끈질긴 투쟁과 훈련 끝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뒤에도 악조건은 계속됐다. 보온병에 담아둔 뜨거운 물마저 얼어버릴 만큼 극한의 추위 탓에 마가르는 날씨가 풀리기를 18일간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두 구의 시신이 실려 내려왔지만 그는 산에 올랐다.

전 구르카 산악대장이었던 크리쉬 타파가 이끄는 네팔 등반가 팀의 지원을 받았지만, 다른 산악인은 3시간30분이면 주파할 빙벽 루트도 그는 11시간이나 걸렸다. 정상에 다다른 뒤에도 악천후로 산소마스크가 얼어붙는 통에 등정의 기쁨을 겨우 몇 분간만 누리고 내려와야 했다.

지난 4월3일 네팔 산악인 하리 부다 마가르(43)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마가르가 등반할 때 사용하는 의족들이다. EPA 연합뉴스
지난 4월3일 네팔 산악인 하리 부다 마가르(43)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마가르가 등반할 때 사용하는 의족들이다. EPA 연합뉴스

두 다리를 잃은 마가르는 한때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신의 삶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국 통신사 <에이피>(AP)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19살까지 네팔에서 자랐고 외딴 마을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대우받는지 봤다”며 “아직도 많은 사람이 장애는 전생의 죄이며 장애인은 지구의 짐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믿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키, 골프, 등산 등 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제 마가르의 목표는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의족을 딛고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은 마가르가 처음은 아니다. 2006년 뉴질랜드 산악인 마크 잉글리스는 두 다리에 모두 의족을 하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세계 최고봉을 정복했다. 2018년 중국 산악인 샤보위도 69살의 나이에 두 다리에 의족을 차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무릎 위로 두 다리가 절단된 장애인 중에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건 마가르가 최초다.

구르카 용병 출신 네팔 산악인 하리 부다 마가르(43)의 인스타그램 갈무리
구르카 용병 출신 네팔 산악인 하리 부다 마가르(43)의 인스타그램 갈무리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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