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인용 컴퓨터에서 네이버 접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현준 특파원
중국에서 한국 포털 네이버에 대한 접속이 차단되고 있는 상황이 24일 현재까지 나흘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연예인의 중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돌연 취소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가치 외교’로 한-중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벌어진 이 같은 문제로 인해, 한-중 관계가 2016년 말 사드 사태 직후와 같은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에서 네이버에 대한 접속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은 지난 21일부터 시작됐다. 처음 베이징 지역에서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접속이 이뤄지지 않았고, 곧이어 개인용 컴퓨터(PC)를 통한 접속도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현재 베이징뿐만 아니라 제2도시인 상하이와 지린성·랴오닝성·쓰촨성·장쑤성 등 중국 전역에서 아예 접속이 되지 않거나 접속 속도가 매우 느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아직 네이버 접속이 차단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24일 <한겨레>에 “이유를 파악 중인데, 중국 쪽 답변이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도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유관 기관과 함께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만 말했다.
중국은 2017년 6월부터 외국의 아이피(IP) 주소와 유아르엘(URL) 등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시스템인 ‘만리 방화벽’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튜브·트위터·구글 등이 차단됐고, 한국 포털인 다음도 2019년 1월부터 막혀 있다. 네이버의 경우 2018년 잠시 차단된 적이 있으나 이후 뉴스 보기와 검색 등이 가능했다.
중국 정부가 이런 조처를 취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정치적 경고’일 가능성이다. 중국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한-중 관계를 중시하고 미국 편향 외교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지난해 8월 왕이 당시 외교부장은 박진 외교장관과 회담에서 △독립자주 노선 견지 △상호 중대 관심사 배려 △공급망 안정 수호 등 5대 요구를 쏟아냈다. 왕원빈 대변인도 사드 관련 ‘3불 원칙’(사드를 추가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에 불참하며, 한·미·일 군사 동맹을 맺지 않는다)을 지킬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후에도 한-미 관계와 한·미·일 3각 협력을 강화하는 등 미국 일변도의 ‘가치 외교’를 이어왔다. 또 머잖아 미국을 경유해 한·일이 북한 등의 미사일을 탐지·추적하는 레이더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문제와 관련해 최종 결단을 내리게 된다. 3불 원칙의 한 축이 깨지게 된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12일 광저우에 있는 엘지(LG)디스플레이 공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일주일 뒤인 19일치 <로이터> 인터뷰에서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과 관련해 ‘하나의 중국’ 정책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최고 지도자인 시 주석의 ‘체면’이 크게 손상된 셈이다. 결국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끝난 뒤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국장)이 22일 한국을 방문해 “중국의 핵심 관심사에 대한 엄정한 입장”을 밝혔다.
두번째 해석은 중국이 역사적 금기로 여기는 ‘톈안먼 항쟁 34주기’(6월4일)를 2주 앞둔 상황에서 통신 검열을 강화한 영향이란 것이다. 중국은 이날을 전후해 인터넷 우회 접속 프로그램(VPN)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등 통신 검열의 강도를 높인다. 하지만 아직 네이버 외에 다른 국가의 주요 누리집이 중국에서 차단됐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가수 정용화씨가 중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아이치이’의 새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려 17일 베이징에 도착한 뒤 돌연 출연 취소 통보를 받았다. 사드 사태 이후와 같은 ‘한한령’(한류금지령)이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네이버 접속 차단 이유를 묻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유관 정황에 대해 모른다”고만 답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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