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1일 중국 본토에서 온 저예산 패키지 관광객들이 홍콩의 한 식당 앞에 서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홍콩이 관광객 유치에 열 올리며 항공권을 무료 배포하는 행사를 진행한 가운데 홍콩의 대표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 승무원이 영어에 능숙하지 못한 중국 본토 승객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2019년부터 중국 정부가 홍콩에 대한 장악력을 키워가는 가운데, 홍콩 주민들의 불만이 중국인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과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캐세이퍼시픽이 비영어권 승객을 차별했다는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은 한 중국 누리꾼이 지난 21일 중국 청두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벌어진 일을 온라인에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중국인 승객이 담요를 요청하면서 “카펫(carpet)을 달라”고 잘못 말하자 승무원이 “영어로 ‘담요’를 말하지 못하면 담요를 얻을 수 없다. 카펫은 바닥에 있다”며 조롱했다는 것이다.
이 누리꾼은 승무원들이 광둥어와 영어를 섞어 쓰며 중국인 승객을 조롱하는 대화가 담긴 31초짜리 녹음 파일도 공개했다. 승무원들은 광둥어(캔토니즈)를 알아듣지 못하는 승객에 대해 “그들은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라며 조롱했다. 중국 남부 광둥성과 홍콩에서는 광둥어를 쓰지만, 중국 표준어는 보통화(만다린)다. 캐세이퍼시픽은 사건이 알려진 뒤 이틀 동안 세 차례나 사과하고, 문제가 된 승무원 3명을 해고했다.
지난 4월28일 중국 본토에서 온 저예산 패키지 관광객들이 홍콩의 한 길거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홍콩의 ‘중국인 조롱’은 비단 이 승무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팬데믹 이후 중국 본토의 저예산 패키지 관광객이 홍콩으로 몰리는 가운데 이들을 탐탁지 않아 하는 홍콩 주민들의 복잡한 심경에 대해 보도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은 예사고, 공공장소에 쪼그리고 앉아 도시락을 먹거나 아무 사무실에나 들어가 허락 없이 화장실을 사용하는 등 교양 없는 행동을 일삼아 홍콩 주민들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한 중국인 관광객 무리가 초호화 주택이 모여있는 리펄스 베이의 공중화장실 앞에서 컵라면을 먹은 일이 논란이 됐다고 한다. 이들 중국인 관광객은 홍콩에 방문해서도 작은 연고나 인스턴트 커피와 같은 저가 상품만 싹쓸이할 뿐 소비를 많이 하지도 않아서 홍콩 주민들의 불만은 폭증하고 있다. 친중파 의원들로 가득한 홍콩 입법부에서도 “양질의 관광 그룹을 유치할 방법은 없냐”는 논의가 나올 정도다.
지난 4월10일 중국 본토에서 온 저예산 패키지 관광객들이 홍콩의 산책로를 거닐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러한 조롱은 ‘쌍방향’이다. 중국인 누리꾼들은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에 홍콩 주민들의 서툰 보통화 실력을 조롱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공산당 당 대회를 앞두고는 더우인에서 광둥어를 사용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방송을 중단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둥어와 영어를 주로 쓰던 홍콩에서는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후로 보통화 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 뒤에는 중국 정부가 홍콩을 흡수하는 와중에 깊어져 온 홍콩 주민들의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저예산 중국 본토 관광객이 돌아오면서 베이징의 정치적 탄압으로 변모해버린 홍콩에 긴장감이 되살아났다. (중국 본토인에 대한) 홍콩 주민의 불만이 고조되어 때로는 노골적 편견으로 번졌다”며 “지난 3년간 홍콩에서 본토에 대한 비판이 가로막혔다. 이제 이틀에 175달러(약 24만원)짜리 패키지로 홍콩을 찾는 저예산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홍콩 주민의 반응은 때로 무례하다”고 전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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