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머도 기지에서 기계정비공으로 일하는 리즈 모나혼이 2022년 2월15일 남극에서 찍은 사진. AP 연합뉴스
“나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미국의 남극 관측기지인 맥머도 기지에서 기계정비공으로 일하는 리즈 모나혼(35)은 한 남성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작업복이나 스포츠 브래지어 속에 항상 망치를 지니고 생활했다고 말했다. 그는 2021년 기지에서 알고 지내던 남성에게 성폭력을 넘어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기지에서 별다른 조처가 없었다고 주장하며 “그가 근처에 다가오면 숨겨둔 망치로 휘두르려고 했다”고 말했다.
미국 에이피(AP) 통신은 지난 27일(현지시각) 모나혼에 대해 맥머도 기지의 고립된 환경과 마초 문화가 성희롱과 성폭행을 만연하게 하고 있다고 목소리 내는 여러 여성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밝혔다. 에이피는 남극 기지의 12명이 넘는 전·현직 직원과의 인터뷰와 법원 기록을 분석 등을 통해 “남극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맥머도 기지에서 기계정비공으로 일한는 리즈 모나혼이 2021년 11월 남극에서 찍은 사진. AP 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보고서에서 남극기지의 성폭력 문제가 드러난 바 있다.
보고서는 맥머도 기지에 일했던 여성 59%가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설문조사에서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72%는 그런 행동이 남극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기지에는 레이도스 등 연구용역을 수주한 여러 업체가 있는데 여기 고용된 인력이 남반구의 겨울엔 200∼300명이고 여름철에는 1000여명으로 늘어난다. 인력의 70%는 남성이다. 현지에 경찰이나 유치장은 없고 무장한 연방 법집행관 한 명이 치안을 담당한다.
에이피는 전·현직 직원 인터뷰 등을 통해 보고서가 드러낸 성폭력 문제를 더 깊게 파고들었다. 에이피는 최근 몇년 사이 성추행·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피해를 털어놔도 상사가 문제를 최소화하려 하고, 오히려 해고를 당하는 등의 패턴이 발견됐다고 했다. 동료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여성이 다시 가해자와 함께 일하거나, 상사들이 강간 피해를 괴롭힘으로 축소하고,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여성이 나중에 해고당했다고 에이피는 보도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다. 재단은 레이도스에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 심각한 사건을 즉각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또 성폭력 신고 사무소를 만들고, 피해자에게 변호인을 제공하기로 했고 24시간 상담전화도 개통할 예정이다.
모나혼은 올해는 쉴 계획이지만 계속 남극기지에서 일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에이피에 “그들이(성폭력 가해자들이) 이기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