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요르단 암만의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의 폭격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져 대규모 시위 참가자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가자지구 알아흘리아랍 병원의 폭발 원인이 “테러 집단의 오발”이라는 분명한 견해를 밝혔지만, 중동에서 북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아랍 시민들은 폭발의 주범을 이스라엘이라 단정하고 이틀째 시위를 이어갔다.
17일 저녁 가자지구 중북부에 자리한 알아흘리아랍 병원 폭발로 471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전해진 직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요르단 등에서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는 이날 밤부터 레바논·이집트·튀르키예·이란, 심지어 오랜 내전이 이어지고 있는 예멘 등으로 이어졌다.
분노를 쏟아내는 시민들의 행렬은 모로코·튀니지·리비아 등 북아프리카까지 확대됐다. 알자지라 등은 18일 이틀째 계속되고 있는 이어진 시위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일부 시위대는 자국 내 미국과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 몰려들어 진입을 시도했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선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행진하던 수천명이 “아랍 땅에 시오니스트 대사관은 안 된다”며 대사관 인근 건물에 불을 질렀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는 시위대가 이스라엘·미국 국기를 불태우고 미국 대사의 추방을 요구했다. 시위참여자 이네스 라스웨드는 로이터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식량과 물도 없이 폭격을 받고 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대량 학살이며 범죄”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스라엘과 외교관계 개선을 시도하던 튀르키예에선 반이스라엘 정서가 극에 달했다. 수도 앙카라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 앞을 비롯해 전국 12곳 도시에서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18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 참석한 시위 참가자들이 팔레스타인 국기와 이라크 국기를 흔들며 행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18일 이스탄불에선 경찰이 이스라엘 영사관에 진입하려는 시위대 수천명의 해산을 시도하며 물대포를 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5명이 구금됐다.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에 있는 미국 영사관은 아예 폐쇄됐다. 이스라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튀르키예 여행 경고를 발령하고 현지에 머무르는 자국민들에게 출국을 촉구했다.
시위대가 항의를 이어가는 가장 큰 원인은 지난 참사가 이스라엘이 저지른 일이며 그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시위자 모하메드 타헤르는 로이터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한 ‘진짜 악마’이다. 전 세계는 이를 제대로 못 보고 있다”면서 “어제 무슨 일(가자지구 병원 폭발)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냐”고 호소했다.
18일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미국 영사관 앞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가 이어지며 대규모의 시위 참여자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숙적’이자 하마스를 후원해온 이란은 이런 정서를 적극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란 시위대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만을 감싸고 도는 미국을 향해 “세계인들이 미국을 시오니스트 정권의 공범이라 여길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 이슬람 세계의 가혹한 보복이 이뤄질 것이다. 병원에 대한 공격은 시오니스트 정권의 끝을 향한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 열기가 고조되며 이스라엘군에 희생된 이들도 나왔다.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시위에 참석한 15살·17살의 팔레스타인 10대가 이날 임시 행정수도 라말라 근처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희생된 두 명은 이스라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타이어에 불을 지르려 했고 이를 본 이스라엘군이 이들을 쏘았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수백명의 유대인 평화 운동가들은 미국 워싱턴에서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에 휴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소속 시위대는 미 의회 사무소 건물을 가득 메우고 “지금 당장 휴전하라”고 외쳤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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