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건물 여러 채가 한꺼번에 무너지며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서 바라본 가자지구에는 성한 건물이 거의 없다. 스데로트 AFP/연합뉴스
이스라엘방위군(IDF)의 지상작전이 가자지구를 일정 기간 남북으로 분단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제거’를 위해 북부 공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군사작전이 끝난 뒤 똑 부러지는 정치적 해결책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가자지구는 ‘당분간’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북부와 피난민들이 몰려 있는 남부로 분단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30일(현지시각) ‘비밀에 싸인 가자에서 이스라엘 지상 공격의 초기 단계’라는 기사에서 이스라엘 군사전문가들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디(D)데이 공격 대신, 조심스럽게 몇마일 혹은 100야드(약 90m)씩 전진하면서 하마스의 은폐 폭발물과 터널을 찾고, (북부의 주요 도시) 가자시티 주위로 탱크와 병력을 신속히 배치할 수 있는 통로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이스라엘군이 현재 보이는 모습을, 지역을 칼로 얇게 저며내듯 청소하고 장악한다는 의미에서 ‘슬라이스 전법’이라 부르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30일(현지시각) 이스라엘방위군(IDF)의 공습 이후 폐허로 변한 북부 가자시티의 텔알하와 지구에서 황망한 표정으로 거리를 지나고 있다. 텔알하와/EPA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이와 함께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에게 거듭 “남부로 피난하라”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군의 목표가 일단 가자지구의 수도 구실을 하는 가자시티가 자리한 북부 지역을 장악한 뒤, 그곳에 집중된 하마스의 전력과 기반시설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다.
군 출신으로 국방장관을 지냈던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도 지난 28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가자 봉쇄 계획’이라는 글에서,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항복하고 모든 인질을 풀어줄 때까지 가자지구를 절반으로 나눠서 북부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구 내부에 접경을 따라 폭 2㎞의 안전지대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분단해 북부에 살던 주민들을 남부로 내려보낸 뒤 이곳을 사실상의 ‘무인 지대’로 만들자는 안이다.
가자 분단과 주민들의 시나이반도 강제이주를 제안한 이스라엘 첩보부 문서.
이스라엘 잡지 ‘메코미트’ 역시 같은 날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문건을 제시했다. 기사를 보면, 이스라엘 첩보부는 지난 13일 가자지구의 남북을 나누고 장기적으로 주민들을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로 강제이주시킬 것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즉, 가자지구 북부에 대규모 공습·공격을 퍼부어 주민 대부분을 남부로 이주하게 한 뒤, 점차적으로 남부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 220만명이나 되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로 밀어내겠다는 것이다.
첩보부는 나머지 두 대안인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가자지구 집권 △(하마스를 대체하는) 새 지역 정권 수립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실제 이런 대응에 나설 경우 ‘가자지구 문제는 가자지구에서 끝내야 한다’며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유입을 강하게 견제하는 이집트와 마찰이 예상된다.
이 보도가 나오자 이스라엘 총리실은 문서가 가설적인 개념을 제시한 문서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국방부도 가자지구 문제에 대한 초기 생각들일 뿐이고, 전쟁 이후에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맞섰다. 하지만 문서를 폭로한 메코미트는 주민들에게 남부로 이동하라는 이스라엘군의 경고나 최근 작전 모습을 볼 때, 이 계획이 결과적으로 실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언론 메코미트가 지난 28일(현지시각) 가자 북부 점령을 통한 가자 분단과 주민들의 시나이로 강제이주를 제안한 이스라엘 내각 내 첩보부의 비밀문서를 보도했다. 사진 속 인물은 하임 골드버그 첩보부 장관.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