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9월26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 국무부에 <민족일보> 사건에 관한 장문의 비밀보고서를 보낸 것은 이례적이다. 당시 미 대사관의 정치 관련 문건들은 대부분 5·16 군사정권의 움직임에 관한 것이었다. 이에 비춰보면 미국은 <민족일보> 사건에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16 쿠데타 이후 미국은 대체로 군사정권을 관망하며 각종 사안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또는 비교적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던 데 비해, <민족일보> 사건에 대해선 상당히 비판적인 점도 눈길을 끈다.
◇왜 <민족일보>에 주목했나 = 첫째 보고서는 <민족일보> 사건을 진보세력에 대한 5·16 군사정권 대응의 시금석으로 지적했다. 미국은 <민족일보> 사건이 진보인사들에 대한 잇단 체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민족일보>를 가리켜 “좌익 또는 개혁세력 성장의 가장 뚜렷한 증거”라고 언급해, 이 사건의 상징적 의미에 주목했다.
또 하나는 이 사건이 법과 언론자유라는 기본적인 민주주의 가치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미 대사관은 “(이 사건의 더욱 예민한 부분은) 소급입법에 허술하게 규정된 범죄에 대한, 또 결론이 나지 않은 기소내용에 대한 사형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대사관은 이어 “똑같이 소급입법이 적용된 사건이라 할지라도 <민족일보> 사건은 깡패나 이승만 정권의 약삭빠른 범죄자들을 다루는 사건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사건 평가 = 미국의 평가가 곧 실체적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민족일보>를 ‘좌익 성향이 강한’ 매체로 보면서 “일부 구성원들이 공산주의 공작원일는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군사정권이 조용수 사장에게 사형을 선고할 만큼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선 극히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 대사관은 “정부가 진정으로 이 사안의 (유죄를) 입증했는지 결론내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는 듯한 대목이 눈에 띈다. 미 대사관은 한 예로 “피고인 이종률은 신문이 너무 급진적이라 그만뒀다고 주장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보소식통들은 이종률 자신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민족일보> 편집진에 의해 해고당했다고 믿을 만한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수사와 재판이 허술했고, 처음부터 조용수 사장을 겨냥해 재판이 계획적으로 진행됐을 수 있음을 제기했다.
◇ <민족일보> 사건이란 =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군부정권은 민족일보사 조용수 사장 등 관련자들을 전격 체포했다. “<민족일보>는 재일동포 간첩인 이영근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북한 노선을 선전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신문은 그해 2월 창간돼 진보적 논조로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8월에 열린 1심에서 조용수 사장 등 3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이 가운데 조 사장에 대해선 그해 12월21일 사형이 전격 집행됐다. 그러나 간첩으로 지목된 이영근이 나중에 노태우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의혹이 많아, 진상은 여전히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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