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위크> 사건은 언론계에도 파장을 불러왔다.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하는 관행이 뿌리부터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뉴스위크>가 기사를 만들기 위해 ‘익명의 고위관계자’를 조작해 냈다고 보긴 힘들다. 편집장 마크 휘태커는 “이 기사는 ‘정통한 정부 관계자’로부터 나왔고, 또다른 정부 관계자도 이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적어도 취재원 이름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그 취재원에게 ‘발언 내용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라는 식의 심리적 방패를 만들어주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은 독자들의 언론 불신을 증폭시킬 게 분명하다. 미국 언론에서도 ‘익명의 고위관리’를 인용한 기사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민감한 고급정보를 다루는 기사나 백악관 움직임을 담은 정치기사에서 그 빈도는 더욱 늘어난다.
‘익명’을 줄이는 건 미국 유력신문들의 당면 과제다. <뉴욕타임스> 옴부즈맨인 대니얼 오크렌트는 최근 옴부즈맨 칼럼에서 시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고위관리에 따르면…’이란 구절을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그건 기자가 자신의 견해를 적은 뒤 뉴스로 ‘포장’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언론으로선 ‘익명’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 배경이 있다. ‘익명’을 보장할 때 정부관리들은 좀더 솔직하고 자유롭게 얘기를 한다.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거짓말을 폭로한 건 ‘딥스롯’으로 불린 권력 핵심부의 취재원이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추측만 떠돌 뿐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4월, 부득이하게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하더라도 그가 믿을 만하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으라고 기사작성 규칙을 강화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개선은 미미한 편이다. 급격한 생존환경의 변화 속에서 언론은 또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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