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긴 해도 2000년대의 첫 10년은 1930년대 다음으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가장 격렬하게 요동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군림해왔던 신자유주의의 종언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이후 누려온 미국의 패권에도 균열이 생겼다. 그 틈에서 ‘가난한 인구대국’의 이미지로 살짝 가려 있던 중국이 급부상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만 해도 미국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첫해가 시작되기 전날 “20세기의 빛은 저물고 있지만, 태양은 미국에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90년대 미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신경제’는 짧은 절정을 맞았다. 그 열풍은 2001년 들어서 ‘닷컴 버블’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2002년 월드컴의 파산과 엔론의 회계분식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비즈니스 모델이 시효를 다했다는 분석마저 나왔지만, 잠깐의 긴장뿐이었다.
1844년 ‘왕샤조약’으로 무릎을 꿇었던 중국은 여전히 미국에 ‘포용’의 대상일 뿐이었다. 미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한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허용했다. 제럴드 시걸 국제전략연구소(IISS) 국장은 “기껏해야 이류의 중견국(middle power)에 불과하다”고 무시했다. 2004년 재선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쟁을 지속하면서 미국의 ‘힘’을 점점 소진했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의 ‘도광양회’처럼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실력을 키웠던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빠르게 편입했다.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인 ‘선저우 5호’를 쏘아올린 2003년부터 5년 연속 두자릿수 성장을 거듭했다.
중국이 2041년께(지난해 2027년으로 앞당김) 미국의 경제규모(GDP)를 능가할 것이란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중국의 미국 추월이란 ‘권력 이동’이 가능한 현실이란 점을 전세계에 알렸다. 미-중 ‘전략경제대화’의 시작은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1960년대 후반부터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잃은 미국은 2000년대 들어서 월가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금융자본주의와 그 패권의 확산에 골몰했다. 몰락 직전까지도 월가는 사상 최고치의 보너스와 사상 최대치의 실적을 갈아치웠다. ‘부채 경제’에 의존한 미국의 증시와 부동산은 2006~2007년 들어서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서브프라임 사태’에 이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역사의 종말>에서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의 승리를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가치가 월가와 함께 무너졌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사이 세계 3위의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최대 외환보유고(약 2조1320억달러), 미국의 최대 채권국(8000억달러어치 미 국채 보유)으로 떠오른 중국은 이제 거리낌없이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위치에 섰다. ‘G2’란 용어의 등장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의 위상을 짧으면서도 명쾌하게 드러낸다. 지난해 열린 베이징올림픽은 ‘중화의 부흥’을 공식화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