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욱 <뉴스9> 앵커
위키리크스 폭로 미 외교전문 ‘고위급 KBS 기자는 한나라당의 승리를 점친다’
2007년 대선 두 달 앞둔 시점, 고대영 보도본부장과 민경욱 앵커 “MB 당선 낙관”
“고향·학교 출신 쓰지 않고…능력 따라 인물 기용할 사람…” 미주알고주알
2007년 대선 두 달 앞둔 시점, 고대영 보도본부장과 민경욱 앵커 “MB 당선 낙관”
“고향·학교 출신 쓰지 않고…능력 따라 인물 기용할 사람…” 미주알고주알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고대영 <한국방송>(KBS) 보도본부장(당시 해설위원)과 민경욱 <뉴스9> 앵커(사진·당시 취재기자)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낙관하며 미국에 각종 정보를 전달한 사실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외교전문을 통해 14일 드러났다. 특히 민 앵커는 이 대통령에 대해 “측근이 아닌 능력에 따라 인물을 기용할 사람” 등 우호적인 입장을 여과없이 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고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미 외교 전문 가운데 2007년 9월19일자 미 대사관발 비밀 전문(confidential)은 ‘고위급 KBS 기자는 한나라당의 승리를 점친다’는 제목으로 고 본부장의 대선 전망을 미 국무부에 보고했다. 이 전문은 고 본부장을 ‘미 대사관의 잦은 연락선’(frequent Embassy contact)으로 적고 있다.
고 본부장은 “이명박의 자질이나 능력 때문이 아닌 세 가지 한국사회의 거대한 흐름” 때문에 이 후보자가 당선될 것이라며 “(그가) 덜 민족주의적인 점, 북한에 대한 증가하는 의혹, 경제 성장에 대한 높아진 요구”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당시 여름에 터진 신정아 스캔들과 관련해 “통합민주당에 상당한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며 “대선이 채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가까운 측근에 의해 배신당한 멍청한 대통령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진보 정당으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일 것”이라고 밝혔다.
고 본부장은 또 “이명박은 박근혜와 박근혜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지지세력의 후원 없이는 보수파의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없다(powerless)”며 이 대통령 후보가 당시 보수층으로부터 실질적인 지지 기반이 없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7년 12월17일자 주한대사관발 미 국무부 비밀 전문은 민경욱 앵커를 통해 전해들은 이명박 후보자에 대한 내용을 ‘포항 뿌리’, ‘현대’, ‘실용주의’, ‘수줍음 타는 남자’, ‘인적 관리’, ‘스캔들’, ‘핵심 비전의 부족’, ‘종교’ 등의 소제목으로 자세히 정리했다. 이 전문에서 드러나는 이 대통령은 ‘깨끗하면서도 탈법에 대한 죄책감이 없고, 정실인사를 하지 않으면서도 주변에 측근들만 있는’ 모호한 인물로 나타난다.
민 앵커는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을 담을 다큐를 제작하는 세 팀이 있는데, 당선 후보자의 다큐만이 방송될 것”이라며 자신이 참여하고 있던 이 후보자의 다큐 취재 과정에서 알게된 내용들을 전했다. 전문에는 그가 포항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이명박 후보 지인을 만나는 등 약 한 달간 관련 취재를 해온 것으로 나온다.
민 앵커는 전문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곁들여 자세한 정보를 전한 것으로 나온다. 그는 “내가 만난 이명박을 잘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매우 깨끗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가 현대에서 일하던 시절 “개인적인 청탁을 받아주지 않아 고향 친구들과 친척들이 실망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그러면서도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탈세-위장전입 논란에 대해서는 “당시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비슷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자신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명박 후보자는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이번 선거가 도덕성보다는 경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이 후보자가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당선될 것”이라고 점쳤다.
민 앵커는 또 이 대통령 후보를 ‘수줍음이 많은 사람’(shy guy)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후보자의 가장 가까운 지인 몇몇에게 듣기로 그는 마음 속까지 수줍은 사람”이라며 “이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그의’ 사람들만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이명박은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큰 탐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명박은 경제적 전문성이 제한됐지만 뛰어난 결단력 덕분에 한국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한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 마지막에 미 대사관 쪽은 “민경욱은 다큐에 대해 조사를 하는 한 달 동안 이명박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완전히 설득당했다”며 “(이 후보자에 대한) KBS의 다큐는 이명박이 아주 좋아할 만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은 “KBS 직원은 본인 또는 취재원·출연자의 개인적인 목적에 영합하는 취재·제작 활동을 하지 않으며, 취재·제작 중에 취득한 정보는 프로그램을 위해서만 사용한다”고 밝힌 KBS 윤리강령과 위배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KBS) 쪽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대화를 한 것이어서 두 분 모두 윤리 강령을 어긴 것이 아니다”라며 “위키리크스에 나온 것은 신문 기사에 나온 ‘카더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본인들 입장에서는 황당한 상황”이라고 밝혔다고 <미디어오늘>은 전했다.
민경욱 앵커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깨끗하다’는 것은 한 달 동안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이명박 후보의 지인들의 말을 옮긴 것”이라며 “이 후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밝혔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그 전문의 작성자는 제 워싱턴 (특파원) 당시 이웃이 데리고 왔던 동안의 한국계 미국인”이라며 “아마 자신이 아는 부분, 자신이 조사한 부분을 저의 이야기와 얼기설기 엮은 것 같다”고 적었다.
민 앵커는 2004년 <한국방송>의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으며 2011년 신년개편을 맞아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 9’의 앵커를 맡았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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