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달 사순
세계적 헤어스타일리스트 비달 사순 사망
여성의 섹시미에 대한 개념을 바꾼 헤어디자이너 비달 사순이 9일 숨졌다. 향년 84.
미국 로스앤젤레스 경찰 대변인 케빈 메이버거는 유명 인사와 부호들이 몰려 사는 로스앤젤레스의 대표적 부촌인 벨에어의 자택에서 사순이 이날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순의 사인에 대해 “그는 숨지기 3년 전부터 백혈병을 앓아왔으며 자연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사순은 192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리스 테살로니키 지방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이었고 어머니는 스페인에서 이주한 유대인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유대교회가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7년을 지내야 했다. 가족과 재결합한 것은 11살이 되어서였다. 어린 시절 축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권고로 14살 때 런던의 한 미용실에 도제로 취업했다. 스무살이던 1948년 제 1차 중동전쟁 때는 이스라엘 군에 입대해 싸우기도 했다.
그가 미용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54년 런던에 개인 미용실을 개업하면서부터다. 1950년대 여성들의 헤어 스타일은 대부분 머리를 돌돌 말아 높이 틀어 올린 ‘부푼 머리’였다. 그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은 매일 밤 머리를 돌돌 마는 기구인 ‘컬러’를 착용한 채 잠들었고, 일주일 마다 한 번씩 미장원에 가야했다. 사순이 착안한 것은 머리를 다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단발머리인 ‘보부(bob) 커트’였다. 기하학적인 모양의 짧은 머리로도 여성이 충분히 섹시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영국 <비비시>(BBC)는 이를 두고 “1960년대의 혁명적인 헤어컷“이라 평했다.
사순의 단발머리는 시대의 조류였던 ‘여성 해방’의 흐름과 맞아 떨어져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수많은 ‘오피스 걸’들이 그가 창안한 단발머리에 미니 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1968년 개봉한 영화 <로즈메리의 아기>에서 열연한 여주인공 미아 패로요, 1969년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우먼 인 러브>의 주인공 글렌다 잭슨 등이 사순이 창안한 헤어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다.
1965년 미국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옳긴 뒤에는 ‘비달 사순’이란 브랜드로 샴푸, 헤어 컨디셔너 등 각종 헤어 용품을 출시해 큰 인기를 모았다. 비달 사순 샴푸는 우리 나라에서도 팔린다. 말년엔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미용학교를 열어 젊은이들의 육성에도 애썼다.
사순은 200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생일 때 ‘대영제국 커맨드 훈장(COBE)’을 받았고, 이듬해엔 그의 일생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그는 평생 네 번 결혼했다. 숨질 때 그의 곁을 지킨 것은 네 번째 부인 론다와 전처 소생인 자녀 3명이었다고 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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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즈메리의 아기>에서 열연한 여주인공 미아 패로요의 머리를 만지고 있는 비달 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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