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죽은 줄 알았던 소련군, 아프간 주민된 ‘영화 같은 사연’
그의 이름은 세이키 압둘라일까, 바프레딘 하키모프일까.
영국 <가디언>은 6일 러시아 현지 언론을 인용해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행방불명 처리됐던 병사가 30년 만에 아프간의 서부 도시 헤라트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3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사이 소련 군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채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던 젊은이 하키모프는 흰색 터번을 감고 수염을 기른 초로의 아프간 주민 압둘라(52)로 변해 있었다.
하키모프를 찾아내는 과정은 한편의 영화와도 같았다. 러시아는 옛 아프간전(1979~1989) 참전 용사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국제병사위원회를 통해 아프간에서 행방불명된 옛 소련군을 찾은 작업을 20년 넘게 이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간이 탈레반 세력에게 통치되고 있던 시절에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옛 침략자인 소련-러시아의 현지 조사를 탈레반 정권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상황이 변하면서 위원회도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한다. 하키모프의 경우 2월23일 현지 자원봉사자의 손에 끌려 헤라트 주변을 수색하고 있던 위원회 관계자들과 접선이 이뤄지게 됐다고 한다.
아프간 전쟁이 2년째에 접어들던 1980년 9월. 약관 20살의 나이였던 하키모프는 101 자동소총 부대의 소총수로 헤라트 주변의 작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전투에서 머리 쪽에 부상을 당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4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알렉산더 라브렌티에프 국제병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숨질 위기에 놓였던 하키모프를 도왔던 것은 현 주민들이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이 부상을 당한 그를 전쟁터에서 구해내 상처를 약초로 치료했다. 하키모프는 완쾌된 뒤 그를 구해준 이들 곁에 남기로 하고, 아프간 전통 의학을 배웠다. 이후 그는 아프간 현지 여성과 결혼해 이름도 세이키 압둘라로 바꿨다. <가디언>은 “그의 부인은 얼마 전 숨졌고, 부부에게 아이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제 압둘라는 헤라트의 신단드 지구 유목마을의 촌장으로 일하며 주민들에게 전통 의술을 베푸는 의사 역할을 한다. 그는 이제 러시아어를 거의 말하지 못한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어머니와 형제들의 이름, 그가 ‘붉은 군대’에 징집됐을 당시 거쳤던 몇몇 지명들 뿐이다. 그는 “가족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고, 그들이 나를 만나는 일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는다면 나도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시포프의 원래 출신지는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젊은이가 소련군으로 징집돼 아프간에서 행방불명된 뒤 현지인으로 살아온 인생사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어두운 소련사의 한 페이지라 부를 만하다. <가디언>은 아프간전에 참전했던 264명의 소련군이 여전히 행방불명 중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위원회는 29명을 찾았고, 그 중에 러시아로 돌아간 이들은 22명이다. 남은 7명은 현지에 남겠다고 했다고 한다.
30년 만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 남자는 세이키 압둘라로 남길 원할까, 바프레딘 하키모프로 돌아가기 원할까.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그는 행복했을까?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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