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러일전쟁 패배는 국민들에게 쓰라린 기억을 남겼다. 우리는 일본을 무찔러 오점을 설욕할 날이 올 것을 믿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이다.”
시게미쓰 마모루 일본 외무장관이 도쿄만에 정박한 미 함선 미주리호에서 2차대전의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던 1945년 9월2일,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러일전쟁 패배로 인해 소련이 감당해야 했던 치욕과 이를 설욕한 기쁨을 감격에 찬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전했다. 그로부터 68년이 지나는 동안 두 나라는 아직 평화조약도 체결하지 못한 어색한 관계로 남았다. 러시아한테 일본은 극동지역 안보의 잠재적 불안 요소였고, 일본한테 러시아는 2차대전 말기 불가침조약을 깨고 만주에 침공한 뒤 북방영토(쿠릴열도의 4개 섬)를 훔쳐간 믿을 수 없는 상대였다.
그랬던 두 나라가 2일 도쿄에서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이른바 2+2회의)를 사상 최초로 개최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2회의’는 동맹 또는 동맹에 준하는 국가의 주요 각료들이 모여 안보 현안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나누는 장이다. 어제의 적을 뭉치게 한 것은 ‘강해진 중국에 대한 경계감’이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의 부상을 배경으로, 아직 어색한 관계에 있는 러시아와 일본이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해석했다.
이번 회의에서 러시아는 일본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에도 이해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일 회담 뒤 “일본이 적극적 평화주의 정책(집단 자위권 행사)을 자국 헌법에 명시된 평화 원칙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가운데 추진할 것임을 확실히 했다”며 일본의 정책 변화를 이해한다는 뜻을 표시했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이 직접 외부의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동맹국 등이 공격받았다는 이유로 타국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3일 일본 언론들은 이번 회의에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 평가했다. 해적 퇴치를 위한 양국 해군간 공동훈련 개최, 사이버 안전보장협의 창설·정례화 등 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역시 핵심 현안인 중국에 대한 대응과 영토 문제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처음부터 ‘중국 견제’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이번 회담에 임했다.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지난 2월 일-러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일본이 회의를 제안했고, 4월 정상회담에서 이를 확정했다”며 “러시아가 예상보다 빠르게 반응을 보이자, 일본 정부 내에선 ‘러시아도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경계하고 있다’는 견해가 확산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양국의 입장엔 거리가 있었다. 회의 개최 전부터 러시아가 “우리는 중국이 없는 곳에서 중국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며 확실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북방영토 반환 문제에 대해서도 내년 1월 양국 외교 당국간 차관급 회의를 열기로 했을 뿐, 더이상 진전은 없었다.
러시아는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이 참여하는 미사일방어(MD) 체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일본 쪽에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순수한 방어적 수단”이라고 답변했지만, 러시아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한편, 중국과 일본은 지난달 31일 중국 해군의 군사훈련 지역에 일본 자위대 함선이 진입한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으르렁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 문제와 관련해 중국 국방부가 주중 일본대사관 소속 무관을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고 2일 보도했다.
도쿄 베이징/길윤형 성연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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